가공의 수치 속에 숨겨진 "정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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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 4월6일 평양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는 81년도 북한예산이 공표 되었다.
통상 재정상(윤기정)의 재정보고형식으로 발표되는 전년도 결산과 당해 연도 예산은 달리 아무런 경제수치도 발표치 않은 북한에서는 그 경제사정을 추정해볼 수 있는 유일한 단서가 되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먼저 80년도 결산을 통해 지난해 북한의 경제사정을 살펴본다(별표참조).
그 결산은 얼른 보기에도 부분적이고 추상적이다.
그것은 전년도의 계획(예산)과 실적(결산)간에 비교 가능한 수치가 외부에 공개되기를 꺼린 데 기인한다.
먼저 80년도 결산에 나타난 세출과 세입을 비교해보면 5억5백32만원(북한화)의 재정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 흑자는 80년도 재정지출을 계획비 99·7%로 억제하고 세입을 계획비 101·3%로 늘린 데 기인한다.
일반적으로 공산국가예산에서 재정흑자라는 것은 건전 재정임을 과시하기 위한 지표가 된다. 그러나 계획보다 예산지출이 줄어든 데서 얻은 재정흑자는 만성적 소비억제·생산목표미달·투자계획차질 등을 뜻하는 것이며 크게는 경제성장의 전반적 둔화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하여 80년도 공업성장률을 보면 그들의 발표를 액면그대로 받아도 된다해도 17%인데, 이것은 7개년 계획기간(78∼84년)의 연평균성장률 18%에 미치지 못한 수치이다.
다음 부문별로 계획과 실적을 비교해 보면 기본건설·수산업·주택·교육·보건의 5개 항목만이 비교 가능하다. 이중에서 주택건설은 계획의 2분의1도 못되는 실적이다. 반면 수산업은 전년비 1·7배 계획에서 2·5배 실적으로 초과 달성한 것으로 되어있다. 북한수출품의 주종인 수산물 증산을 통해 외화소득을 늘려야만 했던 외환사정의 긴박성을 반영하는 것 같다.
작년의 경우 냉해로 인한 농작물피해가 컸다는 것은 이 재정보고에서 숨길 수 없는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즉 80년도 곡물생산실적은 「79년도 수준」으로 되어 있는데 79년도 생산액이 8백80만인이므로 이것은 80년도의 생산목표 9백50만t에서 70만t이나 미달되는 실적이다.
80년도는 그 동안 북괴군사비의 추이로 미뤄볼 때 획기적인 해다. 물론 군사비의 절대 액은 꾸준히 증액되어 왔으나 재정지출에 대한 구성비가 14·9%, 즉 사상 처음으로 14%대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책정된 액수(28억1천5백14만원)를 전액 집행하지 않고 0·3%(5천6백67만원)의 자금을 환납한 꼴이 되고있다.
공산국가에서 군사비룰 다른 부문에 은닉시키는 것은 상식으로 되어있다. 군수산업자금은 인민경제비에, 그리고 병기개발비는 과학기술부문에 은닉하여 명목상 군사비를 줄이는 것은 일종의 평화공세다. 이런 통념에서 보면 북괴가 명목적 군사비마저 전액 집행하지 않았다 하여 이를 실질적 군비축소로는 아무도 보지 않을 것이다.
이제 81년도 예산을 살피기 전에 먼저 전제해야 할 것은 예산상에 나타난 수치들이 군사비를 제외한 모든 비목에서 재정지출에 대한 구성비가 아닌 전년비만을 나타내고 있어, 비목별 실수파악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다만 해당연도의 재정규모 내에서 투자중점의 추이와 경향만을 부분적으로 파악하는데 만족할 수밖에 없다.
81년도 예산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전력공업이 가장 높은 투자증가율(전년비l·7배)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강하천에 언제를 건실하고 거기에 중소 수력발전소를 세우겠다는 예산보고에서 중점투자를 하면서도 난항을 거듭하는 북한의 에너지 난을 짚어 볼 수 있다.
그리고 소폭이지만 70년대를 통하여 꾸준히 증자해왔으나 문제가 풀리지 않은 부문은 수송부문이다. 80년대에 들어와서도 작년의 115·4% 증자에 이어 금년에도 113% 증자를 하여 철도전기 화와 대형화물차·선박건조에 늘어나는 재정투자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수송의 애로를 호소하는 소리는 높기만 하다. 이것은 북괴지도부가 전쟁에 대비, 주요산업시설을 오지에 지하화한데서 나온 후과다. 바꾸어 말하면 공업화의 기본설계에서 육·해운의 편의가 있는 해안지대에 임해공업단지를 조성하는 대신 해안포진지를 구축한 과오가 빚은 대가는 이처럼 엄청나다.
전력공업에 버금가는 중점사업은 전년비 1·3배의 문화시설·주택건설분야다. 여기에는 김일성 개인숭배를 위한 박물관·동상건립과 전시적인 궁전·극장 등의 대 건축물에 대한 건설투자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북한 땅에는 해마다 공전의 대풍이 찾아 든다고 선전하나, 81년도 곡물생산을 전년비 70만t이나 많은 9백50만t으로 잡은 것은 아무리 숫자놀음이라 지만 지나친 허욕이랄 수밖에 없다.
북한예산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은 이런 추상적이고 부분적인 예산을 보고서는 북한주민들 자신도 그 살림살이의 규모를 알 도리가 없겠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백성에게는 알리지 말고 따르게 하라』(민불가지지 가사유지)는 봉건적 정치논리가 여기에도 반영되어 있다. 강재윤(본사동서문제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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