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서 두 다리 잃은 역전의 용사 2명 목발 짚고 한라 정상에 올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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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두 다리가 없는 불구의 몸으로 한라산 정상을 정복했다.
뒹굴고, 때로는 양 팔과 무릎으로 기면서 목발하나에 온 몸을 의지한 채 해발 1천 9백 50m의 눈 쌓인 백록담에 오른 것이다.
성한 몸을 가진 사람들조차 생각도 못할 설산(설산)에의 도전자는 월남정글에서 베트콩의 지뢰에 두 다리를 잃은 박윤서씨(33·서울 북아현 1동 138의 27)와 고근영씨(30·경기도 평택군 진위면 봉남리 200).
귀신 잡는 해병용사로 10년 전 월남전에 참전했던 이들은 작렬하는 포화 속에서 생사를 같이했던 전우로 두 다리가 찰리는 비운을 하루간격으로 맞았다. 본국으로 후송되어 6개월간의 치료를 받은 뒤 70년 10월 각각 화랑무공훈장을 받고 명예 전역을 했지만 이미 하반신이 모두 잘린 반신의 불구자였다.
『목발이 없으면 한치도 움직일 수 없는 몸, 다만 상징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요. 좌절과 번뇌로 몇번 자살도 생각했습니다』.
고씨는 그동안 병상에서 읽었던 신체의 불구를 정신력으로 극복한 숱한 선인들의 이야기가 좌절을 이겨낸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제대 후에도 두 사람은 부상기념 일이 되면 만나 서로를 격려하며 앞으로의 인생설계를 의논하곤 했다.
두 사람이 한라산 등반을 계획한 것은 지난달 초. 부상한지 10년째를 맞아 지난 10년 동안 변한 자신들의 모습을 돌이켜 보고 새로운 삶의 의지를 산의 정상에서 엄숙하게 다짐하자는 뜻이 있다.
지난달 29일 상오 10시 20분 해발 9백m지점인 어리목에서부터 등반을 시작했다. 어리목가지는 버스를 이용했다.
비상식품과 약이든 배낭은 고씨의 고향친구인 양승만씨(31·운전사)가 도왔다.
몸 성한 사람이면 1시간에 오를 수 있는 코스도 목발 하나에 의지한 이들에겐 2시간 또는 3시간이 걸렸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를 수십번, 나뭇가지에 얼굴을 할퀴고 양쪽 켜드랑이엔 떨어질 듯한 통증이 왔다.
해발 1천 3백m 관목지대 계곡을 지날 때 해는 완전히 졌고 어둠이 깔렸다. 눈 쌓인 계곡 길에 목발을 잘못 짚어 눈 구덩이에 빠지기가 일쑤였다.
이를 악물고 다시 일어나 걸을 때까지 서로가 도와주는 것을 사양했다. 『죽음이 눈앞에 올 때까지 정상정복은 혼자의 힘으로 하자』는게 처음 출발 때 이들의 결의였다.
어리목을 출발한지 꼭 11시간만인 하오 9시 만세동산을 거쳐 해발 1천 7백m 윗세오름 대피소에 도착했다.
대피소에서 하룻밤을 묵은 이들은 30일 상오 8시 45분 마지막 정상 코스를 향해 떠났다.
대피소에서 정상까지는 l.8㎞. l.5㎞의 고원지대를 지나자 정상 3백m를 앞두고 분화구에서 흘러내린 용암바위가 가파른 절벽을 이루고 있었다. 정상인들도 쇠줄사다리를 잡고 가는 최난코스.
무릎 높이로 눈이 쌓여있었다. 여기서부터는 양팔과 무릎으로 기다가 몸을 뒤쳐 딩굴고 다시 기면서 한치 한치 정상을 향했다.
이러기를 2시간. 상오 11시 20분, 손끝에 온 신경을 쏟으며 더듬어 기어가던 그들 앞에 더 이상 잡히는 것이 없었다.
망망무제-. 천지가 트이고 보이는 것은 하늘뿐이었다. 정상, 정상이었다. 짝을 지어 기어오르던 두 사람은 그만 얼싸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백록담 물이 유난히 푸르러 보였다.
이들은 13시간에 걸친 고투 끝에 정상을 정복한 뒤 그날로 영실 코스를 택해 하산, 다음날인 31일 하오 2백 3일의 한라산 등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박씨는 현재 국립원호병원에서 사회사업가로 일하고 있으며 고씨는 고향인 평택에서 집안 농사일을 돌보며 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이번에 우리가 한일은 용기에서 비롯된게 아닙니다.
남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확인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두 사람의 미소가 그토록 싱그러울 수가 없다. <이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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