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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방 무슨 브랜드니? 아니야, 내가 만들었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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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가지 가죽으로 만든 수제 가방들. 기성품처럼 보이지만 만든 이의 감각과 정성이 들어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작품들이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 직장인 주민정(38)씨. 한쪽에 놓아둔 친구의 가방이 예사롭지 않다. 세련된 디자인에 고급스러운 가죽과 깔끔한 마감까지, 200만~300만원은 족히 넘을 것 같다. ‘어느 브랜드 거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어디서 샀는지 물었다. “직접 만들었다”는 말에 한 번, “30만원 정도 들었다”는 말에 또 한 번 놀랐다. 주씨는 며칠 지나지 않아 가죽공방의 문을 두드리게 됐다.

 요즘 강남·홍대 지역을 걷다 보면 가죽공방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가죽 도매시장이 있는 신설동 지역에 밀집해 있던 가죽공방이 시내 곳곳으로 퍼진 것이다. 가죽공예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가죽공예의 중심은 바로 ‘가방’이다. 대부분 가방을 만들기 위해 가죽공방을 찾는다. 불과 4~5년 전까지만 해도 유명 명품 브랜드를 주축으로 한, ‘누구나 갖고 싶어 한다’는 의미의 ‘잇백’이 여성들의 드레스룸을 점령했다. 그러나 대중화된 명품 브랜드로는 자신을 차별화할 수 없다고 아쉬움을 토로하던 여성들은 이내 디자이너 브랜드의 개성 넘치는 가방으로 눈길을 돌렸다. 남다른 스타일을 원하는 욕구는 급기야 가방을 직접 만드는 것으로 이어졌다. 공방 ‘테소로’의 이환기 대표는 “가죽공방에서는 직접 디자인한 가죽을 자르고 구멍을 뚫은 다음, 그 구멍을 따라 한땀 한땀 정성껏 손바느질을 해 가방을 완성한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단 하나의 가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직접 디자인하고 바느질한 ‘나만의 가방’을 소장하기 위해 공방을 찾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고 말했다.

가죽공방서 제작법 배워 나만의 명품 백 제작
 직장인 권은혜(30)씨는 6개월 전, 명품 브랜드의 가방 못지 않게 좋은 가방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작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얘길 듣고 가죽공방을 찾았다. 권씨는 “수백만원이 훌쩍 넘는 가방을 살 수 없어 똑같은 디자인을 의뢰하려고 공방을 찾았는데, 직접 만들면 더 의미가 클 것 같아 공예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가죽 종류와 부자재에 따라 다르지만 미디엄 사이즈의 토트백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은 대략 20만~30만원. 디자인이나 소재를 따져봐도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명품 백보다 못할 것도 없다.
 저렴한 것 외에 장점은 또 있다. 가방을 만드는 과정은 ‘힐링’도 선사한다. 공방 오픈을 준비하고 있는 신재은씨는 “손바느질을 하면서 노동의 가치, 땀의 소중함을 느끼는 동시에 망치질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것이 바로 가죽공예의 매력”이라며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가죽공예를 시작하면 지갑(1) 같은 소품을 먼저 만든다. 스티치 가죽을 표시할 때 쓰는 스티치 마커(2)와 재단칼(3).

시간이 지날수록 멋 더하는 가죽의 매력
 가죽공예는 대부분 펜 케이스, 지갑 같은 작은 소품으로 시작한다. 가죽의 성질을 익히고, 재단·바느질 등 기초적인 기술을 배운 후 본격적인 가방 만들기에 들어간다. 3~4개월 정도 꾸준히 배우면 집에서 몇 가지 도구만으로 혼자 만들 수 있다. 인터넷 동영상을 보고 제작 과정을 배우는 이도 적지 않다. 공방에서 배우고자 하는 경우, 자신에게 맞는 공방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공방마다 사용하는 소재와 제작 방식이 다르고 제작 가능한 가방이 한정된 곳도 있다. 원하는 소재와 디자인을 정한 다음 제작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대표는 "단순히 명품백을 카피해 갖는 것이 목적이 되면 진정한 가죽공예의 매력을 느끼기 힘들다. 패턴 뜨는 법부터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곳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영국·이탈리아 등 유럽에서는 가죽공예가 대중화된 지 오래다. 20~30대부터 60대 할머니까지, 가죽공예를 배우는 연령층도 다양하다. 가죽이 사랑받는 이유는 바로 가죽 자체가 가진 매력 때문이다. ‘심야공방’의 김호영 대표는 “가죽의 매력은 바로 ‘에이징(aging)’이다. 가죽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쓰면 쓸수록 빛을 발한다. 개인의 정성과 땀을 더해 자신만의 명품을 만들기에 가장 적합한 소재”라고 말했다.

<신도희 기자 toy@joongang.co.kr,김현진 기자,촬영 협조="시몬느·심야공방·김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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