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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은 누가 맡지?"…총탄맞고도 여유|「레이건」대통령 피격의 현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워싱턴 김건진특파원】

<저격순간>
「레이건」은 30일하오 2시25분(현지시간), 백악관서 1.6km떨어진「호텔」에서 연설을 마치고 「플로리다」가 쪽으로난 옆문을 나서고있었다. 대기중인 「리무진」까지는 3m 거리였다. 미소를 지으며 문밖의 군중에게 손을 흔드는 순간 총소리가 울리고 「레이건」의 얼굴은 경악으로 굳어졌다. 거의 동시에 한발짝뒤에서「레이건」을 따라오던 경호원이 대통령의 어깨와 허리를 감싸 몸믈 눕히게한 후 바로 전용 「리무진」의 뒤좌석으로 밀어넣었다.
총소리는 연속적으로 울렸다. 6발이 쏘아진 것으로 보이나 경황중에 아무도 몇발인가를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했다. 빗나간 총탄 2발은 대통령 리무진에 맞았다.
저격당시 현장에선 CBS·ABC·NBC등 3대TV 네트워크가 모두 뉴스용 필름을 찍고있었다. 저격범 「힝클리」는 이들 카메라맨들의 뒤쪽 「레이건」으로부터 3m쯤 떨어진곳에서 총을 발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보비서 「브래디」와 「마이크·디버」등은 대통령 바로옆에서 걸어나오고 있었다. 총격순간 「디버」는 운좋게 약간 떨어져있어서 화를 모면했으나 「브래디」와 경호원·경찰관등 세사람은 총탄에 맞았다. 「브래디」등 세사람이 길에 쓰러지는 동안에도 대통령이 총탄을 맞은줄은 아무도 몰랐다. 대통령자신도 처음에는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백악관 부대변인「래디·스피크스」도 처음에는「레이건」이 다치지 않았다고 기자들에게 밝혔었다. 「레이건」의 가슴에 총알이 박힌 사실이 알려진것은 「리무진」이 「조지·워싱턴」대 병원에 도착한 후였다.
저격직후 대통령을 차에 태운 경호원과 경찰은 곧 저격범을 붙잡을 수 있었다.
현장에있던 AP통신의「월터·로저즈」기자는 저격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저격범은 바로 내옆에 있었다. 총소리가 바로 귀옆에서 울리고 번쩍하는 불빛이 보였다. 1초∼1초반쯤뒤에 누군가가 비명을 질렀다. 사람들이 소리지르며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대통령 경호원들은 「레이건」의 허리를 굽혀「리무진」안으로 밀어넣었다. 차가 떠난 직후 경호원들이 내옆의 저격범을 붙잡아 넘어뜨리는통에 나도 함께 나뒹굴었다.
우리기자들은 사건직전 대통령에게 「폴란드」정부와 노조간의 협상타결보도에 관한 논평을 듣기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문 바로옆에 서 있었다. 내옆에는 키가 작은 금발청년이 서있었다. 내가 그를 비키라고하자 그는 퉁명스런 태도로 자리를 지켰다. 그는「기자들이 항상 방해를 한다」는 요지의 말도 내뱉었다.
대통령에 앞서 두사람의 경호요원이 문을 나왔다. 그다음 백악관사람들과 다른 경호원들에 이어 대통령이 나와 군중에게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한 기자가「대통령각하, 레이건 대통령각하」하고 소리쳤다. 군중들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이순간 총소리가 났다. 나는 이때 취재용 녹음기를 틀어놓고 있었다.나중에 테이프를 틀어보니 충소리는 2초동안 여섯번이나 울렸다.』

<배후 스시>
미연방수사국(FBI)은「레이건」의 피격이 단순한 한 미치광이의 단독범행인지 아니면 배후에 어떤 세력이 도사리고 있는지의 여부를 캐기위한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한 목격자는 범인 「힝클리」 혼자서 22구경 콜트 권총 여섯발을 쏘았다고 주장했으나 또다른 목격자는 그런 주장에 이의를 제기, 주목을 끌고 있다.
미국 3대텔리비전방송은 사건직후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계속 저격현장을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방영하면서 사건의 추이를 시시각각으로 보도하고 있다.
사건현장 필름을 보면 범인은 「레이건」을 비롯한 4명에게 총상을 입히고 현장에서 체포됐는데 그 순간 백악관 비밀경호원들은 즉각 「이스라엘」제 「우지」기관단총을 꺼내들고 범인을 뺑둘러싸면서 범인을 「보호」하는 장면이 나온다.
백악관경호실측은 과거「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사건때의 경험으로 봐서 대통령저격범이 다시 저격되는 사태를 막는 것이 사건수사의 가장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말하자면 혹 있을지도 모르는 제3의 배후세력이 범인을 살해해서 증거를 인멸시킬 수도 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FBI수사관들은 「콜로라도」주의 부자집 아들인 범인「힝클리」의 범행동기와 배후세력과의 관련여부에 관한 정보가 아직은 초보단계임을 인정하고있다.

<백악관의 참모진들 사태추이 보고받아>

<백악관>
사건직후 「레이건」 행정부의 모든 각료들이 백악관으로 집결, 긴급설치된 백악관상황실에서 사태의 추이를 시시각각으로 보고받았다.
백악관상황실에는「헤이그」국무장관을 비롯해 「와인버거」 국방· 「리건」 재무·「스미드」 법무·「케시」중앙정보국(CIA)장등이 주축이 되어서 사태를 분석, 검토하면서 필요한 지시를 내리고 있다.
백악관 상황실은「텍사스」에 가있던 「부시」 부통령과 긴급직통전화(하틀라인)를 연결, 긴밀한 대응책을 논의하면서 단한순간의 행정공백도 없도록 준비태세를 갖추는 한편 미국의 우방들에 사건의 초기개요를 설명했다.
미국방성은 국내외에 주둔중인 전미군병력에 강화된 비상경계령을 내릴것도 검토했으나 평화시 최하위경계태세인「방위태세(데프콘)5호」의 경계를 취하고 있다.
백악관 주변과 「레이건」대통령이 입원한「조지·워싱턴」 대학부속병원주변에는 수천명의 경찰과 비밀경호원들이 삼엄한 경호를 하고 있으며 백악관통행증을 소지한 출입기자들 이외에는 「일체 외부인사의 백악관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가스회사 경영자의 막내아들 정신병력있는 텍사스 공대생>

<범인>
저격범인 「존·워노크·힝클리」2세(25)는 「콜로라도」주 「에버그린」시 출신으로 「덴버」시에서 석유 및 가스탐사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실업가「존·힝클리」의 3자녀중 막내인 것으로 밝혀졌다.
「힝클리」는 「댄버」시에서 서쪽으로 30km 떨어진「에버그린」 애서 소년시절을 보낸후 아버지회사가 있던 「텍사스」주「댈라스」시에서 「하일랜드·파크」고교를 마쳤다.
FBI조사로는 「힝클리」가 정신불증안세를 겪지않은것으로 돼있으나 가족들은 그가 최근 정신질환으로 치료받은바 있다고 말했다. 그가 다니던 교사들은 그가 「보통학생」이었다고 말했다.
대통령경호실대변인은 아직까지는 「힝클리」가 왜 대통령을 암살하려했는지 전혀 이유를 찾아내지 못했으며 단독범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덴버」시의 FBI지부에서도 「힝클리」가 아무런 전과사실도 없다고 확인했다.
사건직후부더 FBI요원들은 「힝클리」의 집을 경비하고 있다.
「힝클리」는 「텍사스」공과대학에 등록했으나 학교에는 별로 나가지 않은것으로 밝혀졌다.
한편「힝클리」의 부모는『이 비극에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느낀다. 우리는 아들「존」을 사랑하고있으며 그애의 곁에 지켜서 있겠다』고 변호사를 통해 말했다. 「힝클리」 의 부모는 제트비행기를 전세내 아들이 붙잡혀 있는 「워싱턴」으로 출발한것으로 알려졌다.
일정한 직업이 없는 범인「힝클리」는 지난해 10월당시 「카터」대통령이 「나슈빌」시에 머물고 있었을 때 3자루의 권총을 소지해 검거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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