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반이후의 선거양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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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합동연설회가 시작되고부터 3 . 25총 선거전은 부쩍 가열되는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흑색」 선전을 벌이던 운동원들이 입건됐는가하면 상대후보의 선거사무장을 매수하려던 일이 발각나 선거기간 중 후보가 구속되는 드문 일까지 벌어졌다. 단속에 나선 검찰은 전국에서 이미 2백여 건의 부정선거운동사례를 적발했다는 것이며 합동연설회가 자칫 인신공격전으로 변모할 조짐 역시 없지 않다는 소식이다.
각 당이 다투어 선거공약을 발표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할 선거쟁점은 드러나지 않고 있어 선거전은 정책대결보다는 인물 또는 조직대결로 가는 양상이 뚜렷하다는 진단도 있다.
이 정도의 일로 이번 선거가 전체로 타락선거 또는 쟁점 없는 선거라고 속단해서는 안되겠지만 당초에 걸었던 큰 기대가 제대로 충촉되지 못하는 방향으로 선거양상이 흘러가는 듯한 느낌은 지우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남은 8, 9일간이나마 타락시비가 일지않는 깨끗한 정책대결의 선거전이 되도록 관련 모든 당사자의 분발있기를 기대한다.
선거전의 관심은 뭐니뭐니 해도 인물과 그들의 주장일수 밖에 없다. 더구나 새 정계는 구 정치풍토와 구 정치인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새로 나서는 인물들이 옛사람과 얼마나 다른 어떤 사람이며, 그들의 언동과 정치「스타일」은 또 얼마나 참신한가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첫「테스트·케이스」가 이번 선거인 셈인데 후보들이 구시대에 지탄받던 방법이나「스타일」그대로 선거전을 벌인다는 것은, 곧 스스로의 언행불일치를 자인함이요, 아울러 제5공화국의 명분을 약화시키는 역사적 과오를 저지르는 것임을 냉엄히 인식해야할 것이다.
또 유례없는 변동 끝에 맞이하는 「새 시대」의 「새 인물」로 자임한다면 왜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킬 참신한 「새 주장」이 없는가 라는 점도 후보들은 생각할 필요가 있다. 「헌 생각」을 품고서는「새 인물」이 될 수 없다. 「새 시대」를 바라보고 경륜하는「새 마음」 은 새 인물의 조건이 아닐 수 없다. 새 시대 새 역사를 창조할 새 주장들이 앞으로 많이 나왔으면 하고 바라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지금껏 각 당이 내놓은 공약이나 후보들의 주장가운데 전국적 관심사가 나오지 못한 까닭은 그 내용이 나쁘거나 국민에게 불필요한 것이기 때문이 아니다. 공약들을 보면 하나같이 알차고 필요하고 실현됐으면 하는 주옥같은 내용이다. 그런데도 공약을 둘러싼 공방이 없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우리가 보기에 그 까닭은 많은 공약들이 시대적 관심이라 할까, 이 시기의 궁금증 같은 문제에 효과적으로 연결돼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예컨대 경제발전이나 복지확대를 어느 당이나 내걸었지만 이는 고전적 명제이며 구 시대와는 달리 새 시대에서는 이를 어떻게 추구하여 달성하겠다는 시대 정신이 담길 필요가 있다. 또 각종 개발사업의 공약이나 법령정비의 공약 같은 것도 재원조달이나 실현의지에 관한 현실감을 수반할 때라야 관심을 모을 수가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이슈」부재의 분위기 속에 그래도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원내안정세력」을 둘러싼 공방이 아닌가한다. 여당은 정국의 안정이 있어야 소신 있는 국정추진이 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원내안정세력의 확보를 호소하는 반면 제 야당은 건전한 비판세력의 필요성을 고창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는 결국 유권자들이 표로써 판가름 낼 문제이나 이런 논쟁이 일어나고 관심을 확대시켜 나가고 있는 현상자체는 바람직하다.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정국안정은 나라의 안정과 발전에 불가결한 요인임은 다 아는 일이다. 더구나 「할일」이 많은 나라일수록 그 필요는 더하며 대화와 토론의 정치가 뿌리를 내리지 못한 나라일수록 원내안정세력의 존재는 정국안정의 필수적인 조건이다. 의석이 평준화된 다당제하의 국회가 화합과 능률의 의정을 운영할 수 있으려면 오랜 훈련과 전통의 확립이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 문제는 임기 중 소신 있는 국정추진을 취지로 하는 대통령 단임제와도 밀접히 관련시켜 판단할 일이다.
우리는 곧 종반으로 접어들 선거전이 더 이상 타락과 부정의 논란 없이 정책대결의 방향으로 흐르기를 기대하며 앞으로의 진행과정을 주시코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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