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피해자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군 가혹행위로 사망한 윤 일병 사건 때 누군가가 말했다. “난 잘못 없는데 남의 잘못으로 벌 받는 군대의 단체기합. 그게 고문관이나 왕따의 출발점이다.”

 학창시절 체육시간이 떠오른다. 매번 반복되는 팔벌려뛰기 체조가 고문이었다. 한 명이라도 마지막 동작에 구호를 붙이면 벌로 동작 수가 늘었다. 체육 선생님은 악명 높았고, 도맡아 실수하는 아이가 있었다. 기합이 계속되고 숨이 턱턱 막혀오면 선생님보다 아이가 더 미워졌던 기억이 난다.

 신체허약자, 우울증 환자 등 군 부적응자를 일컫는 ‘관심병사’ 문제도 비슷하다. “수행해야 할 임무와 잡일이 산적한 최전선의 병영은 낙오자를 배려할 만한 잉여자원이 없다. 피로에 젖은 집단은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는 개인을 배제하거나 처벌한다. (오히려) 고된 병영에서 제 할 일을 못 하면서 똑같이 혜택을 누린다면 ‘거저 먹는 것 아니냐’고 주장한다. ‘날로 먹는’ 개인에 대해 공동체는 처벌에 나선다. 20대에 일반화된 하위문화로서 왕따다.”(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말하자면 전체에 손해를 입히거나 기여 없이 무임승차하는 개인을 전체의 이름으로 처벌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때 왕따나 구타를 당한 이들은 스스로 피해를 불러온 ‘피해 유발자’가 된다. 피해자도 일정 부분 가해에 책임이 있다는 ‘피해자 책임론’이다.

 이런 ‘피해자 책임론’은 성폭력 사건에서 익히 보아온 것이다. 여성의 노출이나 야한 의상이 남성을 자극해 범죄를 유발한다는 논리다. 심지어 피해 여성에게 피해 사실 입증을 요구하는 2차 피해도 번번이 발생한다. 올여름은 그냥 지나가나 싶었는데 얼마 전 한 종편 프로에 나온 남성 토론자는 “여성들의 여름철 노출이 심해져 성범죄가 늘어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말대로라면 온몸을 베일로 휘감은 이슬람권 여성들에게는 성범죄가 제로여야 할 것이다.

 군 폭력이든 성폭력이든 피해가 안 생기는 게 최선이지만, 일단 발생했다면 어떻게 수습하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피해(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는가는 그 사회의 실체를 드러내는 주요한 계기다. 최근 쿠데타 직후의 방콕을 다녀온 사회학자 엄기호는 “(쿠데타 와중에) 사라진 사람들이야말로 그 사회의 진실을 보여준다. 사라짐을 집요하게 기억해 사회의 진실을 드러내야 한다”고 썼다. 사라진 사람들을 피해자로 바꾸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광화문 광장에서 억울한 눈물을 멈추지 않고 있는 세월호 피해자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부장대우

▶ [분수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