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전통적 위기조성 전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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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고유환( 동국대 교수)

북한이 폐연료봉 재처리 사실을 밝힘으로써 스스로 레드라인을 넘었다고 시인했다. 이는 회담을 앞두고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북한의 전통적인 위기조성 전술이다.

북한은 이라크전쟁의 종결단계에서 어떤 식으로든 미국의 압박이 들어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북한은 이라크 전쟁을 통해 먼저 군사적인 물리력 외에는 자신들을 담보해 줄 수 없다고 공공연히 말해왔다.

즉 이라크처럼 먼저 양보한다고 해도 미국이 마음먹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점을 처절히 감지한 것이다. 즉 나름대로의 '확실한 대비책'을 강구하겠다는 의지를 다져놓은 상태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이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난 상황에서 북한으로선 어떤 식으로든지 일괄타결을 서둘러야 할 상황이다. 어쨌든 유관 국가들은 북한의 핵재처리 메시지를 사전에 받고 이번 회담을 서둘렀을 것이다.

◆김영수( 서강대 교수)

북한의 이번 조치는 첫 회의를 앞두고 대화구조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북한은 이라크 전쟁후 미국이 강하게 나오리라고 예상하고 이번 협상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즉 북한은 핵을 카드로 해 미국으로부터 경제지원과 체제보장을 얻겠다는 것이고, 이를 위해 또하나의 벼랑끝 전술을 펼치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레드라인인 폐연료봉 재처리까지 '거론'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회담은 서로의 입장 차이만 확인하고 끝날 가능성이 크다. 회담이 어렵게 될 경우 한국의 입지는 좁아질 것이다. 한국은 한.미정상회담 등에서 북한 측 입장에 서서 미국을 설득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이석수( 국방대 교수)

이번의 북한 조치는 3자회담이 일방적으로 되지 않을 것이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 일본 등 주변 국가들은 이라크전을 지켜본 북한이 수세적인 입장에서 대화에 임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또한 회담이 진행돼도 북한은 ' 3자회담'의 틀을 유지하고 다자로 확대되는 것에 반대한다는 강력한 입장을 전달하겠다는 의미다. 중국은 될 수 있으면 회담에서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한정하려고 한다. 따라서 이번 회담은 실질적으로 양자회담이 되고 이 틀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이번 북한의 '재처리 거론'은 회담의 형식에서부터 모든 것이 협상의 대상이라는 점을 전술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향후 주도권은 북한에 넘어 갈 가능성이 있다. 우리 정부의 치밀한 대책이 요청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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