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게임 중독의 진짜 원인은 경쟁사회가 만든 결핍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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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면

김성완
부산게임아카데미 교수
인디게임 개발자
인디게임개발자모임 인디라! 대표
게임개발자연대 집행위원

우리나라는 세계 최장의 근무시간과 공부시간을 자랑(?)한다. 일과 공부가 우선이니 게임이 좋은 대우를 받기 힘들다. 그래서 게임은 일이나 공부할 시간을 빼앗는 방해꾼 취급을 받거나 심지어 중독을 일으키는 마약 같은 존재로 여겨진다.

 게임은 과연 해로운 존재일까. 게임은 컴퓨터가 발명되기 전부터 인류의 역사와 함께 했다. 바둑이나 장기를 보면 게임이 오래된 존재란 걸 알 수 있다. 사실 놀이는 인류보다 더 오래되었다. 포유류나 조류도 놀이하는 모습을 보이므로 놀이는 인류 이전의 원초적인 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린 새끼들이 놀이하는 모습을 보면 어른의 일을 닮은 것을 볼 수 있다.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른이 돼서 할 일을 놀이를 통해 미리 배우고 익히는 셈이다. 이런 면에서 놀이는 일종의 학습이기도 하다. 다만 여느 학습과는 달리 강제성 없이 자유롭게 참여하고 그 결과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일과 달리 잘못했더라도 얼마든지 다시 즐겁게 할 수 있다. 오히려 일에 대한 좋은 훈련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일을 컴퓨터로 하는 시대에 컴퓨터로 놀이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여러 사람이 함께 게임을 하려면 게임의 규칙이 잘 지켜지고 공정한 경쟁과 보상이 있어야 한다. 게임으로 불리기도 하는 스포츠도 이런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공정한 경쟁과 보상이 없다면 제대로 된 스포츠나 게임이라고 할 수 없다. 게임을 통해 규칙을 지키며 같은 팀끼리 협력하고 상대 팀과는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며 공정한 보상을 얻는 체험은 올바른 사회성과 도덕성을 기르는 좋은 교육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청소년들은 사회의 건전한 일원으로 자랄 수 있다. 그래서 이런 놀이는 특히 청소년기엔 필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나라의 청소년들은 놀이를 통한 사회적 학습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나 학원에서 요구받는 것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이를 경쟁자로 여기는 것이다. 여기에는 협력도 배려도 없고 경쟁자를 누르고 높은 시험 점수를 얻는 것뿐이다. 이렇게 대학생이 되면 조별 과제가 지옥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국가가 나서서 해외에도 유례가 없는 게임셧다운제까지 실시하고 있다. 게임셧다운제를 추진했던 이들은 청소년의 수면권 보장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그들은 청소년들이 잠을 줄이면서까지 게임을 하는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청소년들에게 게임은 그나마 결과에 대한 걱정 없이 자신의 자유의지로 뭔가를 할 수 있고 그에 따른 공정한 보상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현실에서 그럴 수 없는 이들에게 중요한 위안이자 피난처가 될 수 있다. 이는 청소년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청소년이든 성인이든 우리 사회에서 심각하게 결핍된 것을 게임을 통해서라도 채우려는 것이다. 이를 게임 중독이라고 한다면 이런 중독은 존재한다. 하지만 게임 중독의 진짜 원인은 게임이 아니라 치열한 경쟁사회가 만든 결핍이다. 게임 중독은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한 것을 채우려는 본능적인 행동의 결과일 뿐이다.

 일과 공부에 치인 기계가 아니라 행복한 인간으로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아이들이 행복하게 놀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미래를 살리는 길이다. 프리드리히 쉴러가 말하지 않았는가. “인간이란 놀이를 하는 곳에서만 인간이다.”

김성완 부산게임아카데미 교수·인디게임 개발자·인디게임개발자모임 인디라! 대표·게임개발자연대 집행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