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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통령 방미 10박11일 취재낙수-"알찬 결실"에 피로도 잊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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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전격회담…의전준비에 고심>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에 대해선 부정적으로 말할 사람은 별로 없으리라 봅니다.
-방문의 막후교섭을 미국측은 「리처드·앨런」국가 안보담당 특별보좌관이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벌였으나, 우리측에선 김경원 청와대 비서실장·유병현 합참의장·손장래 주미 공사·안전기획부의 김성진 차장 등이 미국에 들를 때마다 이야기를 진행시켰고, 주미대사 관측은 미국 대통령선거 뒤 마무리만 했다고 봐도 될 것 같아요.
-회담이 너무 전격적으로 이루어지다 보니까 의전준비에 무척 애를 먹은 흔적이 역력해요.
-이것과도 관련이 되겠는데 이번 방미가 「스테이트·비지트」(국빈방문)가 아니고 「오피셜·비지트」(공식방문)였어요.
-요즘에는 그런 의전상의 문제를 후진국에서나 문제 삼는다고 해요. 선진국들에서는 회담의 실질을 중요시하지 의전절차 같은 것은 무시하는 것이 보통이지요. 오히려 자연스런 대화를 위해 「오피셜·비지트」를 더 즐겨하는 경향이랍니다.
-그렇지만 전 대통령이 「워싱턴」을 떠날 때의 환송행사에선 예포 21발을 쏘는 등 예상의의 대접을 해 어떻게 보면 「스테이트·비지트」와 「오피셜·비지트」의 중간정도라 하겠읍니다.
-이번 방미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한미 정상회담과 「프레스·클럽」연설인데 정상회담의 분위기가 그렇게 우호적일 수가 없었어요. 「레이건」대통령은 주로 전 대통령에게 얘기를 하도록 해 우리측에서 충분히 얘기를 했고 얘기가 끝날 때 쫌에는 「레이건」대통령이 『합의 안된 것 있느냐, 있으면 내 놓으라』고 할 정도로 모든 것을 들어주겠다는 자세였어요.

<예상외의 대접에 모두 흐뭇>
-「프레스· 클럽」에서는 연설 후 6개의 질문을 받았는데 전 대통령이 농담까지 섞어가며 여유 있게 대답을 하니까 참석한 기자들이 『의외다』『보통이 아니다』는 등의 귀엣말을 하기도 했고 중공을 『친구(미국)의 친구』로 표현한 전 대통령의 답변에는 기립박수까지 나 왔어요.
사실 질의응답에 고약한 질문이 나올 것에 대비해 보좌관들이 전대통령 뒤에 대기했었으나 전혀 보좌할 필요가 없었다는 겁니다.
-전 대통령의 방미로 가장 득을 본 것은 경제계인 것 같은데 주한미군의 부 철수 확약에 힘입어 국내·국외에서 투자분위기가 첫 반응으로 나온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 하겠 읍니다.
-미국과 중공이 상호문호를 개방하고 미국의 무역사절만이 중공을 방문했을때는 이미 일본기업들이 중공시장을 휩쓸고 지나갔던 것처럼 이번에도 벌써 일본이 차관 등 대한진출을 먼저 서두르고 있읍니다.
-l1월30일 전 대통령이 「록펠러」「체이스·맨해턴」은행회장을 만날 때 전대통령을 중심으로 「록펠러」회장과 「웨스팅·하우스」사의 「로버트·커비」회장이 좌우에서 환담하는 광경과 함께 핵연료·원자력발전에 적극협력 하겠다는 공동성명 10항을 보고 원자력발전소 11호기부터는 다시 미국측이 공사를 맡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들을 하게 되었죠.
-전 대통령의 방미에 「타이밍」을 맞춰 각 기업들이 미국의 신문에 회사광고를 내 「뉴욕·타임즈」「워싱턴·포스트」지 등에는 하루에 6, 7면이 한국기업 광고였읍니다.
-이번에 한미경제 협의회 참석차 정주영·조중열·김덕중씨 등이 함께 미국을 방문해 국내의 기자들은 거의 각 「그룹」의 총수들을 만날 수가 없었읍니다.
-김우중씨는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에서 「하와이」로 곧장 날아갔다고 하죠.
-한가지 재미있는 일은 서울 종로지구에서 함께 대통령 선거인단 후보로 출마한 대한항공 조중동씨와 현대「그룹」의 정주영씨의 선거전이죠. 조 회장이 먼저 전 대통령에게 표를 찍어달라고 부탁하자 정 회장은 그러면 대통령은 조 회장을 찍고 나머지 가족들은 모두 자기를 찍도록 해달라고 했다죠.
-정상회담 치고 공동성명 작성에 거의 문제가 없었던 점도 특기할만 합니다.
-인권문제는 전 대통령이 먼저 언급하고 공동성명의 14개항이 거의 일방통행 적으로 미국이 한국을 지원하는 내용이었죠. 「레이건」대통령은 인권이나 내정문제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번 회담에 대해 일본 「스즈끼」수상이 『한국도 꽤 자랐군』이란 표현을 썼답니다.
-회담 뒤 일본과의 접촉 가능성은 공식적으론 전혀 없었는데 그만큼 우리도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증거 인 것 같아요.
-전대통령은 미국의 여러 도시를 방문하면서 교포들을 많이 만났읍니다.
-「로스앤젤레스」·「워싱턴」 등 가는 곳마다 교포들이 아주 열렬한 환영을 했죠. 그리고 비록 소수지만 반대하는 교포들도 있었읍니다.
전대통령이 직접 반대하는 교포들을 목격하기도 했어요. 「하와이」에서는 소수 반대 시위자「데모」대에도 손을 흔드는 등 여유를 보이더군요.

<백악관 만찬엔 민주당원도>
-「워싱턴」에서 교민들을 초청하여 만찬을 가질 때는 이른바 반정부 인사들까지 많이 참석했어요.
-미국시민들의 경우는 워낙 큰 나라라 그런지 직접적 반응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한해에 외국원수만 수십명씩 다녀가는 나라니까요.
-하지만 백악관 오찬에는 민주당 인사들도 많이 참석하고, 또 전반적으로 「레이건」행정 부의 방향에 적극 지지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거리에서도 더러 미국사람들이 태극기를 들고 환영하는 모습이 보였어요.
-이번 방문에선 비행구간이 8구간으로 총 비행시간이 42시간이었읍니다.
-11일 동안에 2일은 비행기안에서 지낸 셈이죠. 비행거리도 3만2천5백방㎞이니까 서울∼부산간을 고속도로로 34회 정도 왕복하는 거리입니다.
-11일 동안 워낙 빡빡한 「스케줄」이어서 수행 기자들도 미국의 거리구경을 제대로 못했읍니다.
-연설문을 19개나 준비해 갔는데 그보다 더 추가됐고 귀국인사 원고는 7일 비행기 안에서 확정 됐읍니다.
-구정인 5일엔 「하와이」에 있었는데 대한항공의 조중동 사장이 당초 「메뉴」에 없던 떡국을 끓여내는 성의를 보였읍니다.
-이번 방문에 앞서 전 수행원들로부터 체면손상이 되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았다는데….
-우선 말을 조심하라는 보안과 품위유지, 그리고 외국여행 뒤 항상 말썽이 되던 공직자 통관규정을 지키겠다는 3개항이었읍니다.

<경부도로 34회 오간 셈>
-입국 때 공항에서 대통령 내외를 제외한 모든 사람의 짐을 철저히 검사했어요. 공직자용 5, 승무원용 2, 일반용 10개 등 17개의 검사대를 만들어 80여명 수행원의 짐을 1시간에 걸쳐「크림」통속까지 철저히 뒤졌읍니다.
-사전서약도 있었지만 한 건도 적발되지 않았읍니다.
-11일 동안 KAL기의 전세료는 63만8천「달러」, (약 4억원) 였답니다.
-대통령 전세기는 미국 방문발표가 있은 뒤 1월 22일 「쿠웨이트」에서 서울에 와 정비한 후 26일 시험비행을 했죠. 그러고도 미심쩍어 27일 KAL의 조 사장이 혼자 타고 울릉도까지 다시 비행하며 점검했다고 합니다.
-대한항공은 고장 등의 사고에 대비해 2월1일 미「보잉」사로부터 구입한 「보잉」747 SP기로 계속 뒤따르게 했죠. 이 비행기는 대통령이 탄 「보잉」707기보다 1시간 30분쯤 뒤에 김포에 내렸읍니다.
-방미보도에서 인공위성 중계를 가장 많이 한 새로운 기록이 있읍니다.
KBS와 MBC 두 TV방송에서 중계를 하고 아침에도 1시간씩 임시보도 「프로」를 진행 했잖습니까.
두 방송국은 대통령이 순방하는 도시마다 3, 4명의 취재「팀」을 각기 파견해 평균 하루 5시간씩 현지중계를 하고, 전 대통령이 「레이건」대통령을 만난 2일 월요일에는 하루 5차례에 걸쳐 8시간을 중계했죠.
-두 방송국이 합동으로 중계를 했다면 훨씬 경비가 절감되지 않았겠느냐는 관람 평이 없지 앉았읍니다.
-이번에「뉴스」의 각광을 받은 것 중의 하나가 우리의 한복이었던 것 같아요.
-영부인이 지난 2일 주미대사관이 마련한 「리셉션」에 고유의 의상을 입고가 전세계 외교관들의 인기를 끌었죠.
-그곳 교포들도 대통령 환영 때 여성들의 대부분이 한복 차림이었읍니다.
-대통령이 비행기에 오르내릴 때 영부인을 거든 것은, 비록 외국에선 공식 여행 중엔 그런 사례가 있다지만 어쨌든 안방 주부들에겐 큰 점수를 땄을 것 같아요.
-대통령이 60년과 61년에 이어 세번째 방미여서 인지는 몰라도 음식에서 한식·양식 모두 잘 들어 시중들기가 편했다죠.
-천부적으로 건강한 탓인지 오히려 승무원이나 수행원들에게 『얼마나 피곤하냐』고 위로하더군요.
-KAL기 승무원들은 모두 2주일 간 유급휴가를 얻고, 또 영부인이 뒤에 청와대로 초청을 한다고 해서 기뻐하고 있어요.

<사진기자 수행 못해 아쉬워>
-본사에서는 매일 통신사 「텔리타이프」를 「체크」하는 것은 물론 외신으로 들어오는 전질사진, 문공부가 「풀」로 찍어보낸 사진들을 챙기느라 애를 먹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신문사 사진기자가 한 명도 수행을 못했던 점이 사진 기자들로서는 아쉬웠던 일입니다.
-외신사진을 받아쓰려니 아무래도 신문사가 직접 찍은 것만큼 마음에 들지가 앉아요. 또 「풀」사진을 쓰다보니 각 신문에서 쓴 사진들이 천편일률적이 되고 말았어요.
-귀국하는 7일 하오에 서울거리에서 사진을 찍는데도 다소 애를 먹었습니다. 66년 「존슨」대통령이 방문했을때는 미국경호원들이 『나온 환영객들은 소수이지만 기자가 찍는 사진은 전국민이 보는 것이 아니냐』며 편의를 제공한 일이 있읍니다.
-지난 4일 저녁 숙직을 했는데 이번 방문에 수행기자도 가고 했으니 통신기사는 필요가 없을 줄 알고 새벽에 밤새도록 들어온 통신문을 무심코 버렸다가 혼났어요. 아침에 정치부의 당번 기자가 대통령 방미에 관한 통신기사를 찾는 게 아니겠어요.
아차 하는 기분에 지하쓰레기장으로 뛰었죠. 가슴까지 차는 쓰레기 속에서 그 통신문들을 찾았죠. 설날 아침부터 쓰레기 속을 헤집고 다녔어요.
-방미에 얽힌 취재낙수는 한이 없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전대통령이 방미로 심은 씨를 추수하는 실무적인 노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끝내도록 하지요.

<참석자>
정치부 성병욱 부장직대
외신부 김동승 차장
문화부 김준식 기자
정치부 유균 기자
사회부 이석구 기자
기록 전채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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