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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설날 새벽에 담 너머 던지고|동트면「복값」수금 나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복조리를 돌려 학비를 번다.
『이댁에 복 들어갑니다. 복조리요』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이른 새벽, 담장너머로 복조리 집어던지는 품이 배달소년들의 신문 넣기만큼이나 재빠르다. 음력설날 새벽, 복조리 한쌈 을 문에 걸어놓으면1년 내내 액을 물리치고 복이 깃 든다는 우리네 옛풍물.
보은· 담양· 원주· 서산 등 조리원료 산지에서 겨우내 삼은 복조리를 온 식구가 등에 지고 서울길을 재촉, 장안을 돌며『복조리 사려』를 외치던 옛날의 판매형식이 세월이 바뀌며 대학생·고등학생들의 「아르바이트」 부업이 되었다.
서울 쌍림동146 대웅실업. 8평 남짓한 사무실에선 사장 최천호씨(36) 가 50여명의 학생들 등에 50짝(l짝은2개),1백짝씩 복조리를 얹어준다.
담보라면 학생신분 그것뿐. 1짝에 6백50원씩에 받아간 학생들은 대개 2천원을 받고 복조리를 돌린다. 판매원중대학생이 70%, 중·고등학생이 20%,나머지는 무직 등이다.
77년부터 신정·구정·정월대보름에 복조리를 팔아왔다는 사장 최씨는 아직 것 대금을 갚지 않은 학생은 단 한명도 없단다.
지금까지 매년 팔린 복조리는 5만조. 그러나 올해는 눈이 많이 내려 산지로부터 조리수집이 어려워 4만조 정도를 확보했다.
소담한 복조리 2개를5색 「리번」으로 묶고「복」자와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고 찍힌「비닐」봉지에 넣어 담 안으로 집어넣는다.
사람이 직접 받지 않으니 비나 눈에 젖을까봐 「비닐」 봉지에 넣는단다.
복조리 돌리기에도 판매전략이 있다. 복조리와 함께 고온글씨로『복조리와 함께 금년한해도 가정에 만복이 깃 드시기를 기원합니다. 학생 드림』 이라고 쓴 안내문이 곁들여지고 『직접 찾아 뵙고 세배 올리겠습니다』란 말미를 두어 은근히 수금 날자를 밝힌다.
지난 신정에 4백개를 팔아 50만원을 벌었다는 이경수군(21·B공전 2년)은 대문 높은집「벨」을 누르면「인터폰」으로 확인한 뒤 가정부가 나와 담장 밖으로 복조리를 되던지는 집도 있더라며『광차고 인심난다』지만『대문 높고 인심 나는 집』은 못 보았다고 세정을 꼬집었다.
가끔은 원가에도 못 미치는 5백원을 봉투에 넣어 문밖까지 나와 전해주는 노인이 있지만 그때는 값을 떠나 훈훈한 인정을 느낀다고 했다.
이주원군(20·Y대 1년)은 지난 신정때 장위동 어느 집에선 한창 가족기도중이라 30분을 기다렸더니『미안하다』며 봉투에 1만원을 넣어 주더라며 때로 손해보는 것은 이런 가정 때문에 「커버」가 된다고 했다.
이군은 지난번 번 돈으로 1학기 등록금을 마련했다며 야박한 인심도 만나지만 대부분이 복을 거두어들인다며 학생들에겐 한 「시즌」 해볼만한 부업이라고 했다.
보통 2명이 한조. 담당한 동네의 양끝에서부터 복조리 담기를 시작, 동네 한가운데서 서로 만나는 합동작전을 편다.
새벽 일찍 돌린 복조리 값은 그날 상오9시쯤부터 수금을 시작, 2∼3일 걸린다. 『복조리 세배하러 왔습니다. (수금 왔습니다의 뜻)』고 외치면 젖은 손을 행주치마에 닦으며 2천원을 들고 『학생들도 건강하게 복많이 받아요』 라고 웃음 짓는 주부를 만날 때 복조리 장사에 보람을 느낀다고 학생들은 입을 모았다. <전채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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