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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태고 때 솜씨로 곱돌을 깎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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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깎고 갈고 다듬는 팔뚝에 힘줄이 솟는다.
앙바틈한 약탕관, 소복한 솥단지, 촛대는 날씬하고 절구는 실팍하다. 큰 것 작은 것 모난 놈 둥근 놈…. 고물을 반죽하듯 돌을 빚는다.
전북 장수군 장수읍 대성리 「곱돌마을」-.
우리나라에 단하나 밖에 없는 곱돌그릇 제조마을은 「타임·머신」을 타고 2만년쯤 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 듯 온갖 형상의 돌그릇들이 조용한 미소로 감싸고 있다.
『자기(자기)를 대하면 선(선)과 색으로 감흥이 일지만 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음이 오히려 편안해집니다.』 3대를 이어 돌그릇을 만드는 최병옥씨(41)는 마음이 어지러울 땐 돌을 대한다고 한다.
그래서 돌을 깎는 자세를 석심난성이라 표현하는가보다. 도자기를 빚을 때 구부러진 선은 바로 펼수 있지만 석공예는 망치질 한번 잘못하면 다된 물건도 못쓸 돌로 만들어 버린다. 석공의 마음은 항상 난초를 바라보듯 차분해야만 한다.
행정구역상으론 장수읍이지만 읍내에서 큰 재를 넘어 6㎞나 떨어진 산골. 서쪽으로 한가닥 뚫린 장수∼임실국도가 유일한 교통로. 52가구가 옹기종기 머리를 맞대고 있다. 돌보다 나무가 더 많은 산골마을이 석기마을로 된 것은 마을뒤쪽 괘등산(해발7백m)에 묻혀있는 질 좋은 곱돌 탓이다.
일명 납석 또는 각섬석으로 불리는 곱돌은 철분이 섞이지 않은 돌. 입자가 치밀하고 만만하며 불에 잘 견딘다. 쉽게 깨지지 않으면서 여러 가지 모양을 낼 수 있을 만큼 알맞은 강도를 지니고 있다.
최씨집 기록에 따르면 장수곱돌은 5대조 재민이 궁중에 석기 한벌을 만들어 진상한 뒤 숙종 임금으로부터 치하의 하서를 받은 것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최씨의 증·고조할아버지대에선 석기제조에서 손을 떼고 농사일만을 했다.
아무래도 사농공상(사농공상)의 계급의식 때문인 것 같다는게 최씨의 설명.
일제때 가세가 기울고 빚에 쪼들리게 되자 노심초사하년 최씨의 할아버지 순룡씨(12년전 별세)는 선조대의 석기제조 사실을 되살려 부업을 결심했다. 재료를 찾아 2년을 헤맨 끝에 그는 괘등산에서 곱돌을 찾아내 산아래 귀암부락에 자리를 잡고 다시 곱돌 그릇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때가 1923년. 순룡씨는 바로 끊겼던 곱돌그릇을 다시 이은 장수 석기마을의 초대(초대)석기장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처음엔 손으로, 뒤에는 물레방아로 물레를 돌렸죠. 그후 아버지는 석유 발동기로 돌렸고 지금은 전기로 들립니다.』 최씨는 시대 변천에 따라 그릇 만들기도 수월해졌다고 한다.
이 마을 주민 3백 여명은 농사일 말고는 모두가 최씨네 돌그릇공장과 연관을 맺고 산다. 마을에서 3㎞쯤 떨어진 채석장에서 원석을 캐면 적당한 크기로 쪼개어 공장으로 운반한다.
돌을 전동물레에 물리고 새김칼로 생긴 모양에 맞춰 깎는다. 그릇을 깎는 과정은 목기니 질그릇 만들기와 크게 다를 것이 없지만 단단한 돌을 깎고 갈아내는 요란한 마찰음과 뽀얀 먼지가루는 분위기를 압도한다.
5, 6년 전만 해도 솥·약탕관·남비·화로 등을 주로 만들었으나 요즘은 불고기판·촛대·수반·절구 등 제품이 다양해졌다. 같은 불고기판이라도 복판·홈판·평판·평남비·등산용 등 종류가 10여 가지나 된다. 투박하던 초기의 석기에 비하면 요즘 것은 날렵하기가 돌그릇치곤 얌체스러울 정도다. 8명의 석공이 하루 만들어내는 그릇이 1백여점. 손으로 만들던 때는 하루 5점이 고작이었다.
60년 동안 공장규모도 커졌지만 생산성도 그만큼 높아졌다.
석기의 장점은 음식이 고루 잘 익으며 악취를 없애 맛이 좋고 위생적인 것. 『양은이나 놋그릇에 음식물 해먹다가 곱돌그릇을 쓰면 맛이 좋다는 정도밖에 못느끼지. 하지만 곱돌그릇에 음식을 해먹다 쇠그릇 음식을 먹으려면 먹을 수가 없다고 할 정도야.』 지금은 은퇴한 최씨의 아버지 영식노인(61)은 쇠 냄새가 음식 맛을 아주 버린다고 한다. 돌그릇의 주고객은 식당 등 맛을 파는 요식업소. 때로는 건강요법이나 미식을 찾는 사람들, 생활의 멋으로 돌그릇을 찾는 이가 있다.
『돌은 촉감이 차고 딱딱하고 무겁고 둔하지요. 얼른 친해지지 않지만 가만히 두고보면 볼수록 은근한 정이 솟아나는 물건입니다.』
최씨는 두꺼운 돌그릇이 연료가 많이 들지 않을까 걱정하지만 오해란다. 한번 가열되면 양은이나 쇠보다 훨씬 더디 식어 오히려 더 경제적이라는 설명이다.
더우기 지금은 가공기술이 향상돼 보통1㎝, 최고 2㎜두께까지 얇게 만들 수 있어 조리시간도 마찬가지. 특히 한약이나 차는 돌그릇에 달여야 제맛과 약효가 난다는 주장이다. 값은 남비가 크기에 따라 1개에 2천∼4만원, 솥은 7천∼4만원, 불고기판은 3천∼1만원. 월3천여점을 생산, 서울·부산 등 전국에 내보낸다. 1천5백 만원 이상의 매상이지만 채석·가공·운반 등 원가가 많이 먹혀 이문은 『조금 남는 정도』. 그러나 이 마을 주민들은 가구당 연간 소득 3백여 만원 가운데 1백 만원을 곱돌그릇 제조에서 올린다.
『할아버지는 석기로 가세를 일으켰고 아버지는 대중화의 발판을 마련했지만 지금부터는 석기를 예술의 차원으로 높일 계획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가업을 이은 3대 석기장 병옥씨는 주전자·찻잔 등 한 단계 높은 공예품개발에 새봄의 희망을 싣고 있다. <장수=문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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