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없던 영원한 동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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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선생의 부음을 듣고 달려가 영전에 곡하며 나는 비분과도 비슷한 흥분을 억누를 수 없었다.
『천문편』을 쓴 시인의 전례를 따를 것이 허용된다면, 왜 선생 같은 분에게까지 무상의 법칙이 적용되었어야 했느냐고 묻고 싶은 것이었다. 누구나 죽는다는 도리를 나라고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천진무구하기 어린이 같은 선생에게 그 긴 병고를 준 끝에 다시 우리로부터 앗아간 저의가 어디 있느냐 할 때, 저 창창한 하늘은 무엇이라 대답할 것인가.
선생은 어린이 같았다. 나이가 많다 해서 대가라 해서 위신을 꾸미는 일이 없으셨고 누구에게나 솔직·담박하게 대하셨다. 초면의 20대 문학 청년이라도 5분만 선생 앞에 앉아 있으면 기탄 없이 농까지 하게 되었고 원고라도 청탁하러 찾아온 여기자도 이내 아버지처럼 따르는 실례를 수 없이 보아왔다.
어린이로서의 진면목을 선생은 술자리에서 더욱 약여히 나타내 보이셨다. 고급 술집은 딱 질색인데다 양주나 맥주가 나오는 경우에도 꼭 소주를 찾으시는 것이 통례였으므로 선생이 다니시는 곳은 종로 2가 뒷골목의 허술한 몇개의 술집이었는데 주기가 돌면 「위트」와 「유머」가 종횡무진으로 튀어나오고 재담은 노래로 이어져 주흥을 도도히 이끌어 가시곤 했다. 체면이나 예절 같은 것은 전혀 의식하지 않는 어린이셨기에 선생 주위에는 언제나 젊은이가 득실거렸고 술집의 주모나 작부 아가씨들에게도 성심으로 대하셨으므로 그들 모두 이해 타산을 초월하여 선생을 모셨다.
나는 참말이지 한 평생을 통해 선생같이 꾸밈없이 자기를 드러내놓고 사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이런 선생이 아동 문학의 외길을 지금껏 걸어오신 것은 당연하다 하려니와 그 처녀작이 『고향의 봄』이었음에 나는 큰 의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해 오고 있다.
우리 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애창하고 있는 이동시에서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가 피는 산골 마을이 「나의 살던 고향」이라 하여 그리움의 대상으로서 회고하고 있는 터이나 이것이 어찌 선생 한 분의 고함임에 그치겠는가. 산 많은 이 땅이기에 그는 바로 우리 나라 모든 사람의 고함인 것이며 그 티없는 점으로 하여 온 인류의 고향이기도 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에덴」 동산이 「이스라엘」 사람들에 의해 인식된 이상향이었다면, 『고향의 봄』에 나타난 산골 마을은 선생이 제기한 인간 본연의 경지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본연의 세계는 죄를 모르는 동심의 나라 바로 그것이기에 선생은 그 동심 회복을 위해 일생을 살다 가신 것은 아니었을까.
이제 「위대한 어린이」는 가셨다. 그러나 이 나라의 천진한 어린이들과 어른이면서 어린이고자 원하는 많은 사람의 동심 속에 선생은 길이 살아 계실 것이다. 삼가 명복을 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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