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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자 재활」 전공한 인재 유치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보람있는 일을 해보려고 귀국했는데 받아 주지를 않아 되돌아갑니다.』
10여년 전 국립 원호 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있던 나를 찾아와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나버린 어느 여 의사의 마지막말이 오랫동안 내 기억에서 사라지지를 않는다.
그녀는 한국에서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건너가 소아과를 전공하고 있었다. 갖은 고생을 다 겪으면서도 희망찬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운명의 여신은 그녀를 깊은 수렁 속에 빠뜨리고 말았다. 눈 깜짝 할 사이에 교통 사고를 당하였고 그것도 척추 손상을 받았으며 결국 일평생을 하반신 마비가 된 상태로 지내야 하는 불행이 닥쳐왔다.
그의 말에 의하면 하루에도 몇십 번 자살을 결심했고 아픔을 견디지 못하여 수없이 「모르핀」 주사를 맞아야 했단다.
세월이 많이 흐른 뒤에야 이 모든 악몽에서 헤어 나올 수 있게 됐고 그리고 나선 무엇인가 자신에게 주어지는 사명 같은 것을 느끼게 되어 다시 시작한 것이 재활 의학이었다. 자기와 같이 불행하게 된 수많은 환자들을 생각하면서 「휠·체어」에 불구의 몸을 이끌고 열심히 의술을 익혔다. 결국 이국 땅에서 소아과가 아닌 재활의학 전문의 자격을 취득할 수 있게 됐다.
그녀 생각으로는 미국에서보다 한국의 신체 장애자를 위하여 일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여 그곳의 좋은 일자리를 마다하고 귀국하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반갑게 맞이할 고국인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김포공항에 도착하면서부터 일이 꾀기 시작하여 매사가 뜻대로 되지 않았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하반신 마비 환자들을 위하여 특수하게 제작된 자동차를 가지고 왔는데 세관에서 통과시켜 주지 않았으며 특수차이기 때문에 더욱 엄청난 세금을 물어야 했다.
할 수없이 높은 분께 사정하여 간신히 끌어내긴 했으나 그것을 운전하고 돌아다니려 하니 운전면허가 다시 문제였다. 한국에서는 아직 이러한 특수 면허 제도가 없다면서 관계 당국에서 허가를 해주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자기 차를 놔두고 불편한 다른 사람의 차에 실려 그래도 열심히 둘아 다니면서 자기와 똑같은 처지의 환자들을 격려하고 치료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일했으나 별 성과가 없었다. 그리고 피곤하기만 했다. 장비가 전혀 구비되지 않은 물리 치료는 불가능했던 것이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서 해당 기관에 여러 차례 시설 확충을 건의해봤으나 전혀 반응이 없자 이러한 여건 아래서는 자기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음을 깨닫고 눈물을 홀리면서 다시 미국으로 떠나고 만 것이다.
물론 오래 전에 일어났던 일이기에 지금의 국내 사정과는 거리가 있겠지만 의료인의 한사람으로 안타까운 심정 금할 길이 없었다.
올해는 「유엔」이 정한 「세계 장애자의 해」다. 우리 나라만 해도 심신 장애자가 1백만 명이 된다고 한다. 이들은 아직도 사회의 어두운 그늘 속에 살면서 우리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다.
다행히 정부에서는 4월20일을 장애자의 날로 정하고 이것을 기점으로 하여 많은 기념 행사를 준비 진행시키고 있다 한다. 발표에 의하면 32개 기관에서 1백50종이 넘는 대대적인 사업이 진행되고 있어서 전에 보지 못하던 획기적인 제도와 시설 확충 같은 과감한 투자가 기대되고 있다.
장애자의 권리 선언을 보면 장애자의 가족 및 지역 사회는 장애자가 만족스러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모든 적절한 수단을 동원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수없이 많은 행사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입장에 서서 무엇이 그들을 만족스럽게 할 수 있는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건강한 사람들을 위한 법령이나 편견 때문에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되는 일은 없어야겠다.
미국에는 재활 의학을 전공으로 하는 전문의가 9백명 정도가 되며 그 중에 한국 의사가 90명이나 된다는 말을 들은 일이 있다. 이러한 사실은 한국에서 재활 의학이 불모지와 같은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묘한 대조가 된다.
비단 재활 의학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능한 인재들이 본국에 돌아와 일해보고 싶어할 때 문호로 개방하고 그들이 마음놓고 일할 수 있도록 정책을 수립하여 다시는 한국을 등지고 눈물을 흘리며 되돌아서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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