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호화판 취임 축제…「풍요와 힘」을 기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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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조깅」 (카터) 대신 승마 (레이건)가 들어서고 「미소」 대신 「권위」가 「워싱턴」에 자리 잡았다.
「워싱턴」의 분위기가 어느 정도 바뀔 것이라고 대충 짐작들은 하고 있었으나 막상 「레이건」 부대가 「워싱턴」에 「진주」하는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은 모두가 혀를 내두르고 있다. 변해도 지독하게 변한 것이다.

<리셉션 등 백20회>
17일부터 20일까지 연 4일간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인, 동시에 최고급 호화판으로 계속된 취임 축하 잔치는 앞으로 새 대통령 「레이건」의 등장이 얼마만한 변화의 폭을 보일 것인가를 예고한 전주곡과도 같은 것이었다. 4년 전 「서민 대통령」을 자처했던 「카터」의 취임식 총 경비는 3백50만「달러」였으나 「레이건」 진영은 이번 잔치를 위해 「카터」보다 3배가 넘는 l천1백만「달러」를 썼다.
「카터」 취임식 때는 누구든지 25「달러」짜리 입장권만 사면 각종 「파티」에 참석할 수 있었으나 이번에는 최하 l백「달러」에서 최고 l만「달러」짜리 입장권까지 있다.
「레이건」 취임 축하 행사도 다양해서 4일간의 「리셉션」·「파티」·행진·불꽃놀이·음악회·무도회 등이 무려 l백20회가 넘었다.
문호 개방을 내세웠던 「카터」 취임식 「파티」때는 말만 잘하면 누구든지 수수한 옷차림으로 참석할 수 있었으나 이번엔 어림없었다. 모든 행사엔 초청장을 받은 사람에게만 입장이 허용됐고 일반 시민들이 「공짜」로 볼 수 있었던 광경이란 큰길에서 행해지는 「퍼레이드」나 밤하늘에 터뜨려지는 폭죽뿐이었다. 특히 「레이건」과 그의 고위 보좌관들이 참석한 8회의 호화판 무도회에는 모두가 「리무진」을 타고 오는 「턱시도」 차림의 「선택된 사람들뿐」이었다.

<고급 「호텔」 초만원>
인구 70만명의 조용한 「워싱턴」에 하루아침에 미국 전역에서 10만명의 「귀족풍」 사람들과 2만명의 취재 기자들이 몰려들었으니 「호텔」 객실수가 5만명 밖에 안 되는 「워싱턴」이 난리를 겪은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도 이번엔 좀 야릇한 현상이 일었었다.
「워터게이트」「힐튼」「헤이애덤즈」「셰러턴」 같은 고급 「호텔」일수록 제일 먼저 방이 동났다. 고급 「호텔」「카운터」 앞에 서서 「예약이 취소된 방」을 기다리거나 아예 친척·친구 집에서 신세를 지려는 『「레이건」 사람들』을 보고 「조지아」로 떠나는『「카터」 사람들』은 묘한 인상을 짓기가 일쑤였다.
『참 이상하군요. 지방에서 온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값싼 일본차를 마다하고 비싼 대형차를 빌겠다고 아우성이더군요.』
「워싱턴」 지역에서 20년째 자동차 대여 영업을 해온 「화이트」씨의 말이었다. 그는「리무진」은 재고가 없어 장사를 못할 지경이었고 다른 고급 대형차 수요를 대기 위해 멀리 「필라델피아」「뉴욕」에서부터 차를 빌어왔다고 했다.
「프랭크·시내트러」가 총지휘하고 「조니·카슨」이 사회를 본 취임식 전날의 축하「쇼」는 값비싼 이번 행사의 축소판격이었다. 「봅·호프」「찰턴·헤스턴」「엘리자베드·테일러」「글렌·캠벨」 등 「할리우드」의 l급 「스타」들이 대거 출연했었다.

<헌금…헌품 잇달아>
76년에 조촐한 취임 행사를 주선했던 「카터」 사람들은 이 같은 「레이건」의 호화판 잔치를 「지나친 낭비」라고 비판하자 취임시 준비 위원장 「그레이」씨는 『미국 대통령의 권위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대꾸할 필요조차 없다』고 일축했다.
「레이건」 사람들이 큰소리치는데는 이유가 있다. 「카터」의 취임식 경비 3백50만「달러」는 모두 국고에서 지출했으나 이번의 1천l백만「달러」는 모두 일반 시민들과 대기업의 헌금으로 충당했기 때문이다.
헌금뿐 아니라, 취임 행사에 각종 도움을 자처해 오는 사람들이 쇄도했다. 「캘리포니아」의 어느 술 제조 회사는 「파티」용 「샴페인」 5만병을 기부했는가하면 한 제과 회사는「레이건」이 좋아하는 「젤리·빈」 10만 상자를 「워싱턴」으로 공수해 왔었다.
취임 행사 때 만일의 사태에 대비, 무료 봉사를 하겠다고 나선 의사 수만도 1백50명이 넘었고 「낸시」 여사가 입을 옷을 기증하겠다는 고급 백화점이 줄을 이었다니 업체의 장삿속도 있겠지만 「풍요」를 부르짖는 「레이건」 새 「스타일」에 대한 기대감도 작용했다.
백악관 안의 분위기도 물론 변했다.
「조지아」주의 농촌 풍경화와 「에이미」양의 고양이가 나간 자리에는 「레이건」 부부가 좋아하는 값비싼 중국 도자기, 20세기 「디자인」, 「캘리포니아·스타일」이 들어섰다. 백악관의 방 한개에 5만「달러」이상을 들여 우아한 실내 장식을 한 건축 회사 사람들은『동부의 권위와 서부의 화려가 합쳐지는 순간』이라면서 신바람을 냈다.
미국 기술의 첨단인 「레이저」 광선으로 엮어진 밤하늘의 불꽃놀이 장관을 지켜보며 함성을 지르던 수만 관중들은 잠시 현장에 들른 「레이건」 앞에서 『「아메리카」에 신의 축복 있기를』이라고 합창하면서 힘찬 전진을 기원했다. 「마이애미」에서 온 한 노인은 『내 생애의 마지막 「드릴」을 맛보러 「워싱턴」 구경을 왔다』고 소감을 피력했고 「아이다호」주에서 온 여교사 「애덤즈」양은 『굿·럭·프레지던트』 (대통령의 행운을 빕니다)라고 소리를 질렀다.

<백악관도 새 단장>
멀리 「애리조나」주에서 연 5일간 주야로 기차를 타고 「워싱턴」에 온 30명의 「인디언」들도 『우리는 새 역사를 보고자 한다』고 흥분했다.
물론 모두가 박수만 치러온 것은 아니다. 「레이건」의 고도 산업화 정책을 걱정하는 환경 보호 단체들, 지나친 군사력 증강의 여파를 우려한 반핵 운동 단체와 평화주의자들, 「레이건」이 백인 남성 우월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여권 운동가와 흑인 지도자들, 심지어는 「레이건」의 반공 사상을 고쳐주고 싶어하는 「마르크시스트」 단체들까지 대거 「워싱턴」에 몰려들었었다.
절약보다는 생산력 증가, 위축보다는 부국 강병책을 내세워왔던 「레이건」의 백악관 책상 위에 쌓일 정치적 현실들이다.
앞으로의 관심은 일반 국민들에게 희망과 기대를 불어넣는데 일단 성공한 「레이건」의 『새로운 「스타일」』이 이 모든 벅찬 과제를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쏠릴 것이다. 【워싱턴=김건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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