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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현장…그후|아물어 가는 탄촌의 「검은 상처」(사북사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탄촌-검은 상처는 아물고 있었다. 공포와 광란이 4일간의 낮과 밤을 짓눌렀던 「4·21 사북사태」-.
노조와 회사에 대해 쌓였던 불만이 끝내 살인과 집단난동을 불렀던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사위를 둘러봐도 검정뿐인 광산촌은 오늘 따라 당시의 악몽을 잊으려는 듯 온천지에 흰눈을 소복이 덮고 있다.
영하의 새벽 6시, 사택촌을 나서 갱으로 향하는 갑반 광부들의 발걸음은 힘차다. 「두더지 인생」이라고 자학했던 그들은 이젠 「산업건사」의 긍지와 의혹을 갖게 되었다.

<생필품 30% 싼값>
사북은 변했다. 산하가 변한 것이 아니다. 생활환경이 바뀌었고, 근로조건이 바뀌었고, 의식이 바뀐 것이다.
난동사태에 불을 붙인 어용노조지부장 이재기씨는 그뒤 가족과 함께 이곳을 떠났다.
그의 부인이 매달려 「린치」를 당했던 철봉은 뽑히고 그 자리엔 광부와 그 가족들을 위한 현대식 근로복지회관이 들어섰다.
이 회관(11월 18일 준공) 은 대지 1천명에 연건평 4백29평. 총 공사비 3억2천만원(정부지원 2억원·회사출자 1억2천만원)이 들었다. 1층엔 구판장·목욕탕·이미용실·약국·창고·사무실이, 2층엔 도서실·노인회관·어린이집·예식장겸용 새마을교육장 등을 고루 갖췄다.
광부들은 이곳에서 모든 생필품을 시장보다 싸케 사고 문화시설을 실비로 이용할 수 있어 사실상의 임금인상혜택을 입고 있다. 조미료(5백g) 1천3백원, 맛소금(5백g) 2백80원, 어린이털장갑 3백90원, 「플라스틱」대야가 3백40원으로 사북읍이나 근처의 시장보다 30%이상 싼값이다.
광산촌에서 불신의 요인이 됐던 노사간 대화의 장벽도 허물어졌다.

<회보로, 모두 공개>
노조지부장 직무대리 홍금웅씨(42)는 『한달에 한번 열리는 노사협의회에 소장 또는 부소장이 반드시 참석, 양측의 애로사항을 진지하게 토의한다』고 했다.
회의내용은 물론 그동안 흑막에 싸였던 회비사용내용까지 「동원소식」이란 월간물을 통해 전 광부들에게 알리며 그간의 노사협의 과정에서 회사로부터 10억원의 복지기금을 확보하게 됐다고 전한다. 선탄부 정인숙씨 (40)는『노조가 주축이 되어 3개월마다 각 갱의 안전점검을 실시해 미비한 점은 회사측에 통고하는 제도가 생겼다』며 회사간부를 찾아가 개인사정을 하거나 항의하던 광부들이 이젠 노조를 통해 어려움을 풀고 있다고 했다.
사택의 방음시설이 나빠 옆집 소리가 다 들린다는 불평 때문에 8천7백만원을 들여 2백32동 1천4백47가구에 「스티로폴」을 넣고 합판으로 막아 도배를 말끔히 했다. 또 1천6백만원을 들여 사택목욕탕을 모두 「타일」로 개조했다.
광부개인별 채탄량을 정하는 검탄 과정에서 항상 실제량보다 적게 산정, 『광부들의 허리를 끊어먹는다』는 검탄제도 지금은 매월 말 역에 저장된 석탄을 기준으로 측량, 장부상의 저탄량보다 많을 때는 초과량에 대해 갱별로 균등 분배하는 데까지 개선됐다.
금년 채탄목표량은 1백60만t. 현재 1백40만t을 달성, 금년 목표량을 합해 광부들은 열을 내고 있다. 이곳 직원은 행정요원을 빼고 광부만 4천5백명. 사태전과 똑같은 수준이다. 지난달 16명의 광부를 뽑는데 2백60명이 모였다. 질병치료를 위해 휴직중인 사람을 빼고 이직율은 「제로」%다.

<임금개선이 숙제>
광부 이경미씨(39·6백50갱)의 말처럼 분명히 좋아지진 좋아졌다. 그러나 이씨는 『물가상승률을 따르지 못하는 임금인상폭과 광부들의 직업병인 진·규폐층에 대한 대책이 절실하다』고 했다. 사태이후 평균 임금은 22%, 상여금은 연 2백50%에서 4백%로 올랐다. 이를 석공 산하 탄광과 비교하면 1만원 정도 적으나 대우가 좋다는 S민영탄광에 비하면 8천원 정도가 많다. 민영 중에 동원탄좌의 임금이 제일 좋아진 셈이다. 5인 가족을 둔 선산부의 평균 임금이 26만원. 그러나 광부들의 말처럼 저축은 아직 생각할 수 없는 최저생활급이다.
『광부들이 탄 캐는 일을 떠났을 때의 직업보장·생계보장이 정부차원에서 보장되어야 합니다.』 지부장 홍씨는 남은 문제의 해결이 시급하다고 했다.
해발 7백m. 불만과 비리, 마음의 응어리가 뒤엉켰던 탄광마을은 밝은 생산마을을 약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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