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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외교는 실패" 비난했던 힐러리, 진화 나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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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사과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12일(현지시간) 오바마에게 전화를 걸어 “결코 대통령이나 그의 정책을 공격하려고 한 게 아니었다”고 말했다고 대변인 닉 메릴이 밝혔다. 두 사람은 오늘 대통령의 휴가지인 매사추세츠주의 마서스 비니어드에서 열리는 민주당 파티에서 만날 예정이다.

 클린턴과 오바마의 충돌은 ‘멍청한 짓(stupid stuff)’이 빌미가 됐다. 클린턴 전 장관은 지난 10일(현지시간) 시사월간지 애틀랜틱과의 인터뷰에서 “위대한 나라는 정립된 원칙이 필요하다”며 “‘멍청한 짓은 하지 말라’는 것은 그런 원칙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사석에서 자주 언급하는 “멍청한 짓을 하지 말라”는 말을 들어 미국 정부의 대외정책을 비판한 것이다. 오바마의 언급은 미국이 국제 분쟁에 모두 개입할 수 없으니 군사력 사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신중론이다.

이라크 인근 걸프해에 배치된 미 항모 조지 HW 부시함의 무장요원들이 12일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를 공격하기 위해 F/A-18F 전투기에 장착할 공대공 미사일을 나르고 있다. [로이터=뉴스1]

 클린턴의 발언 이틀 만에 데이비드 액설로드 전 백악관 고문이 반론에 나섰다. 대선 승리의 1등 공신인 액설로드는 12일 트위터에 “분명히 하자. ‘멍청한 짓’은 애초에 이라크 점령과 같은 상황을 뜻한다”고 올렸다. 클린턴 전 장관은 2002년 조지 W 부시 정부 때 상원의 이라크전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8년 민주당 경선에서 “나는 이라크전에 반대했다”며 클린턴 전 장관을 공격하기도 했다. 클린턴의 공격에 6년 전 이라크전 카드를 다시 꺼내 역공에 나선 것이다.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백악관 참모진들이 클린턴 전 장관의 비판에 분노했다”고 전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클린턴 전 장관은 시리아 반군에 대한 조기 지원을 놓고도 의견이 엇갈렸다. 클린턴 전 장관은 인터뷰에서 “시리아의 현 정권에 대항하는 반군 세력에게 초기부터 무기를 제공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를 망설이는 바람에 시리아에 힘의 공백이 생겼고, 이라크의 수니파 반군이 시리아에서 기반을 쌓은 뒤 이라크 내전을 초래했다는 설명이다.

 온라인 매체 데일리비스트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오바마 대통령과 상·하원 중진들의 백악관 회동에서도 비슷한 비판이 나왔다. 공화당의 밥 코커 상원의원이 “시리아 반군을 조기에 무장시켰으면 이라크 상황이 지금보다 더 나았을 것”이라고 하자, 오바마 대통령이 ‘헛소리(horseshit)’라는 속어를 쓰며 일축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두 사람의 대립은 언제든 재현될 전망이다. 워싱턴 정가에선 2016년 대선 출마를 저울질하는 클린턴 전 장관이 오바마 대통령과 거리두기를 시작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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