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풍에 20도 틀어진 명동성당 십자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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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방한을 앞둔 11일 명동성당의 십자가가 왼쪽으로 20도 틀어져 있다. [이영환 인턴기자]

지난 100여 년간 서울 명동을 지켜봐온 명동성당의 십자가가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을 앞두고 옆으로 돌아갔다.

 11일 명동성당 등에 따르면 지난 7월 25일 밤새 강한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 성당 건물 꼭대기에 있는 첨탑 십자가의 방향이 왼쪽으로 20도가량 틀어졌다. 교계를 넘어 국가적으로 큰 행사인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을 3주 앞두고 벌어진 일이었다.

 성당을 관리하는 최기림(세례명 베네딕토) 사무장은 “출근을 하면서 항상 십자가를 바라보곤 했는데 지난달 25일 십자가가 조금 이상했다”며 “자세히 보니 옆으로 틀어져 있었다”고 말했다. 최 사무장은 “밤사이 바람이 얼마나 세게 불었는지 십자가뿐 아니라 성당 앞에 쳐놓은 천막도 저 아래 명동 골목까지 날아가 있었다”고 했다.

 명동성당의 공식 명칭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1898년 완공 이후 한국 천주교를 대표하는 상징적 건물로 자리매김해왔다. 첨탑 십자가는 명동성당의 상징인 동시에 한국 천주교의 표상과 다름없다. 교계의 상징인 십자가가 하필 교황 방한을 앞두고 변형되자 명동성당 측은 난감한 분위기다. 성당 관계자는 “교황 성하의 방한으로 한창 바쁠 때 십자가가 돌아가 당황스럽다”며 “성당 완공 이후 100여 년 동안 이런 일은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성당에 10년째 출석 중인 신자 김모(62·여)씨는 “교황께서 오시기 앞서 일종의 ‘액땜’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마지막 날인 18일 명동성당에서 직접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집전할 예정이다. 성당 측은 교황 방한 일정이 끝나는 대로 서울시·문화재청 등 관계 기관과 협의를 거쳐 수리에 들어갈 계획이다. 성당 관계자는 “정확한 훼손 정도를 파악한 뒤 수리 방법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고석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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