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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후 교사 "실험도구 모자라 애들에게 미안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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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서울 강남의 한 고교에서 방과후학교 담당 교사로 일하는 A씨는 요즘 학생들 보기가 미안하다. 방과후학교 지원 예산이 3년 전부터 점차 줄기 시작하더니 올해는 3분의 1로 확 깎여 내실 있는 수업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A씨는 “3년 전만 해도 여유가 있어 수업뿐 아니라 외부 체험활동도 많이 했는데 요즘엔 과학실험 기자재나 소모품 살 돈도 없다”며 “질 좋은 교육은 차치하더라도 기본적인 교육을 위한 예산도 뒷받침되지 않아 수업을 제대로 진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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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복지 등 각종 무상 정책이 남발된 여파로 교육현장 곳곳에서 차질을 빚고 있다. 지난달 서울시교육청이 “더 이상 예산을 줄일 곳이 없다”며 일선 초·중·고의 학교운영비를 평균 500만원씩 줄인 것은 상징적인 사례다. 학교운영비는 교육활동 경비(학습 교구·기자재 구입비)나 방과후학교 지원 예산 등 ‘교육의 질’과 직결된 비용이다.

 교육계에선 진보·보수 가릴 것 없이 쏟아낸 무상 교육·복지 공약을 ‘교육 예산 대란’의 원인으로 꼽는다. 곽노현 교육감 시절 도입한 무상급식 예산은 지난해 2441억원에서 올해 2631억원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돌봄교실 예산은 272억원에서 446억원으로, 누리과정(만 3~5세 유아 대상 무상보육) 예산은 4782억원에서 5473억원으로 급증했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복지 공약은 특성상 한번 시행하면 되돌리기 어렵다”며 “무상교육은 당장 보기엔 매력적이지만 결국은 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피해를 보는 건 학생들이다. 공립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학습 준비물 지원 예산은 지난해 158억원에서 올해 114억원으로 줄었다. 노후한 학교시설을 개선하는 데 쓰이는 예산도 올해 801억원으로 지난해(1716억원)의 절반 수준으로 깎였다.

 교사들도 후폭풍을 맞았다. 교사 명예퇴직 관련 예산이 같은 기간 1733억원에서 660억원으로 깎이면서 시교육청은 올 하반기 명퇴를 7.6%(181명)만 수용한다고 밝혀 교사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무상 복지에 매달리다 정작 도움이 필요한 취약계층은 외면받는 ‘무상의 역설’도 지적된다. 지난 5월 한국교육재정경제학회 포럼에 따르면 시교육청의 보편복지 예산 비중은 올해 68.5%로 지난해(28.3%)에 비해 급증했다. 그러나 저소득층 지원 예산 비중은 46.5%에서 21.5%로 오히려 줄었다. 저소득층 자녀 학비 지원 예산을 516억원에서 495억원으로 줄인 게 대표적이다.

 예산 대란이 심해지자 서울시의회 의원 19명은 11일 “교육부에서 초·중·고 교육을 위해 교육청에 내려보내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확대하고 보육예산은 국고에서 지원하라”고 주장했다. 시 의원들은 18일부터 청와대·국회·교육부를 항의 방문해 1인 시위를 할 예정이다.

 송기창 교수는 “지금 상황에서 최선은 재원을 마련할 방안이 없는 교육 복지사업을 더 이상 늘리지 않는 것”이라며 “내국세 총액의 20.27%인 지방교육재정교부율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환·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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