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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포식자 '아마존' 이번엔 디즈니 길들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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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디지털 시대는 유통의 혁명을 불러왔다. 영화나 음악 등 콘텐트를 구매하는 곳은 이제 레코드점이나 매장이 아니다. 대부분의 고객들은 온라인을 통해 콘텐트를 구입한다. 온라인에서는 지역의 한계가 없다. 가격도 싼 편이다. 신간도 바로 살 수 있다. 온라인 유통업체가 주도권을 쥘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래서 ‘유통 채널 갈등(Channel Conflict)’은 불가피하다. 갈등이 드디어 전면전으로 확산했다. ‘유통업계의 공룡’ 아마존과 세계 최대 콘텐트 업체의 하나인 월트디즈니가 정면으로 충돌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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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0일(현지시간) 세계 최대 온라인 판매업체인 아마존닷컴이 월트디즈니의 영화 DVD와 블루레이 디스크의 예약 판매를 중단했다고 보도했다. 예약판매를 중단한 상품은 이번 주 출시되는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말레피센트(Maleficent)’와 ‘머핏 모스트 원티드(Muppets Most Wanted)’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캡틴 어메리카 : 더 윈터솔저’ 등 최신작이다. 디지털 버전의 구매는 가능하다.

 예약 주문은 엔터테인먼트 업체가 수요를 예측할 수 있는 주요한 수단이다. 신작의 초기 판매 성적을 좌우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예약판매를 못 하니 향후 판매전략을 세울 수 없다. 업체로서는 큰 타격인 셈이다. 아마존은 판매를 중단한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판매 수수료 계약과 관련해 우위를 점하려는 전략이란 게 시장의 중론이다. 처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낯익은 시나리오다.

 아마존의 각본에 따른 첫 희생자는 워너브라더스다. 아마존은 5월 워너브라더스에 DVD와 블루레이 판매 수수료의 인상을 요구하며 워너브라더스의 ‘더 레고 무비’와 ‘트랜센던스’ ‘300 : 라이즈 오브 언 엠파이어’ 등의 판매를 중단했다. 결국 워너브라더스는 손을 들고 아마존의 요구에 응했다.

 아마존은 출판사에도 공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먹잇감은 미국 4위 출판사인 아셰트북그룹이다. 아마존과 아셰트그룹의 판매 수수료 인상 협상은 교착 상태다. 아마존은 아셰트가 출간한 책의 주문을 받지 않거나 할인 판매를 중단하고, 책의 배송일을 늦추는 등 강공에 나섰다. 아셰트는 작가를 우군삼아 아마존을 압박하고 있다. ‘안티 아마존’ 움직임도 구체화하고 있다. 스티븐 킹과 폴 오스터 등 작가 909명이 이날 뉴욕타임스(NYT)에 광고를 싣고 “우리를 협상의 인질로 이용하지 말라”며 아마존을 비판했다.

 2011년 미국 내 2위 서점 체인이던 보더스가 문을 닫는 등 유통 생태계에서 경쟁자가 사라지며 아마존은 포식자의 본성을 드러내고 있다. 아마존이 ‘거친 협상가’가 된 배경에는 실적 악화가 있다. 아마존의 2분기 매출은 23% 늘었다. 하지만 손실을 1억2600만 달러나 내며 ‘어닝 쇼크’를 기록했다. 올 들어 주가는 19.47% 하락했다. 3분기에만 8억1000만 달러의 영업 손실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

 아마존과 월트디즈니의 승부가 어떻게 흘러갈 지는 알 수 없다. 경쟁 상대를 무자비하고 가차없이 짓밟기로 유명한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최고경영자(CEO)와 디즈니의 중흥을 이끈 로버트 아이거 CEO의 만만찮은 힘겨루기는 세계 온라인 유통 시장에서 최고의 관심사가 됐다. 아이거가 온라인 등을 통해 소비자에게 직접 다가가는 것을 선호한다는 점도 변수가 될 수 있다. 실제로 디즈니는 올해 초 유튜브 방송 채널인 ‘메이커 스튜디오’를 인수했다.

 아마존과 디즈니, 다른 콘텐트 업체들 사이의 고래 싸움에 반사 이익을 누리는 곳도 있다. 월마트와 반즈앤노블은 아마존의 디즈니 제품 예약 판매 중단에 반색하는 눈치다. 반즈앤노블은 아마존에서 판매를 중단한 아셰트북 그룹의 책에 대한 할인 행사를 진행하는 등 뜻하지 않은 특수를 겨냥하고 있다. 때문에 아마존과 콘텐트 업체 사이의 갈등이 아마존에도 역풍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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