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정부의 신축적·선제적 대북 접촉 제의를 환영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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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가 어제 북한에 제2차 남북 고위급 접촉을 19일 판문점에서 개최하자고 제의했다. 정부는 김규현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 명의의 통지문을 통해 다음달 8일 추석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비롯한 쌍방의 관심 사항을 논의하기를 희망한다는 입장을 북측에 전달했다. 통일부는 북측이 그동안 요구해온 5·24 조치 해제나 금강산 관광 재개 논의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특정 의제는 안 된다고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5·24 조치는 2010년 북한의 천안함 폭침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제재로, 개성공단의 기존 투자를 제외한 대북 경제협력과 인적 교류를 단절시켰다. 통일부의 이런 입장은 그동안 선을 그어 왔던 5·24 조치 해제나 금강산 관광 재개도 논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정부가 남북 교착 국면 타개를 위해 유연한 입장에서 선제적으로 대북대화 제의를 한 것은 환영할 일이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지속되고 있는 남북 간 소모적 대치 국면을 화해와 협력 쪽으로 돌리는 데는 대화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더구나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인 우리의 대북관계는 주변국에 뒤처져 있는 상황이다. 5·24 조치 이래 북한 경제의 중국 의존도는 심화돼 왔다. 남북 교역이 중단되면서 북한의 대중국 무역이 북한의 전체 교역에서 90%를 차지하고 있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를 놓고 북·일 관계가 급진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남북관계 개선은 불신과 대립의 동북아 정세 속에서 우리의 외교 공간을 넓혀준다. 남북 교류·협력은 북한 핵 문제에 대한 국제 공조의 틀과는 별개로 이뤄질 수 있다. 일본이 그런 접근을 하고 있지 않은가.

 정부의 대북대화 제의 타이밍도 적절하다. 한반도 평화에 깊은 관심을 보여온 프란치스코 교황이 14일 방한한다. 교황은 방한 기간 남북 화해의 메시지를 던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8·15 광복절 경축사도 예정돼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7일 통일준비위원회 첫 회의를 통해 통일정책에 대한 북한의 의구심을 푸는 정지 작업을 했다. “정부의 통일정책 목표는 평화통일이며, 북한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고 교류 협력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평화통일 기반을 구축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9월엔 북한이 참가하기로 한 인천 아시안게임이 열린다. 남북이 교류·협력의 터를 다질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문제는 고위급 접촉의 시기다. 정부가 제의한 19일은 북한이 취소를 요구해온 한·미 연합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 기간이다. 하지만 남북 간에는 한·미 군사훈련 기간 중에도 장관급 회담 등이 열린 적이 있다. 북한은 남측 회담 제의에 호응해 나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강조한 남북관계 개선을 행동으로 입증해야 한다. 정부는 박 대통령 경축사를 통해 남북관계의 새 국면을 여는 실질적인 제안을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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