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민들은|변화를 바랐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카터」가 학수고대했던「기적」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치열한 접전이라던 이번 선거가 일반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고 현직 대통령을 그렇게 쉽게 밀어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대세가「레이건」에게 기울게 된 원인부터 본다면 그동안 미국 전역에서 도도히 흐르기 시작한 보수주의의 물결과 지난 4년간의「카터」정부의 외교·경제 정책 실패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감이 서로 상승작용을 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상원서 공화 다수당>
보수정객「레이건」은「위대한 미국의 건설」을 기치로 내걸고 월남전쟁·「워터게이트」사건 등으로 좌절감에 빠져 있던 미국인들을 일깨우려 시도했고, 「아프가니스탄」사태와 같은 소련 세력의 일방적인 팽창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던 미국인들의 자존심을 교묘하게 건드려 놓았다.
4일 동시에 실시된 상원의원 선거에서 26년 만에 처음으로 공화당이 다수당으로 등장했고 민주당 의원이 1백17영이나 더 많던 하원도 이번 선거를 치르면서 격차가 51석으로 줄었고, 역시 자유파 민주당 중진들의 대거 탈락을 가져왔다.
「부국 강병책」을 근간으로 한「레이건」의 정책 기조가 발표되자「카터」는「레이건」이「전쟁 옹호자」이며「위험한 인물」이라는「이미지」를 부각시키려 시도했으나 유권자들은 오히려 이런「카터」의 주장에 거부반응을 보였고 실추된 미국의 위신을 회복하자는 「레이건」쪽에 동조했다.
도덕 구호에「이란」을 잃고 대소 열세에 빠지게 한「카터」에 대해 미 국민은 등을 돌렸다고 하겠다.

<인플레에 속수무책>
국내 경제적으로는「카터」행정부가 아무리 2차에 걸친「오일·쇼크」를 이유로 국민들에게 인내와 절약을 호소했어도 높은「인플레」(12·7%)와 당장 일자리(실업률7%)가 줄어들고「달러」가치가 계속 하락하는 상황에서 국민들을 설득시키기는 힘들었다.
4년 전 선거에서「포드」행정부의「고통 지수」(「인플레」율+실업률)가 12·5%나 되므로 그를 백악관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스스로 주장했던「카터」로서는『지금의 고통지수는20을 넘었다』고 외쳐대는「레이건」의 반격을 막을 만한 근거가 없었다.
「카터」의 몰락을 재촉한 근인으로는 우선 인질문제가 손꼽힌다. 사건발생 직후부터 미국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인질을 무사히 구출한다는「카터」의 노력에 아낌없는 지지와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1년이 넘도록 인질이 풀려 나오지 못한채 대통령 선거를 맞이한 미국인들의 심정은 착잡했다.
특히 투표2일 전「카터」가 유세를 중단하고 백악관으로 돌아왔을 때 국민들의 기대는 절정에 달했으나「카터」가 시원한 소식도 없이 다시 마지막 하루를 지방유세 길로 떠나자 이기대감은 오히려 행정부의 무능력에 대한 분노로 바뀌었다.
이러한 분노는「카터」가 인질문제를 너무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레이건」측의 주장에 상당한 근거를 제공하기까지 했다.

<부동표도 레이건에>
막바지에「카터」에게 더욱 불리하게 작용한 것은「레이건」과의 TV토론이다. 투표를 2, 3주일 앞두고는 인질문제에 대한 새로운 돌파구가 있을 것이라는 들뜬 분위기와 관련, 그동안 계속 뒤져오던「카터」의 인기가 급상승하는 대신「레이건」의 상승「무드」는 오히려 점차 하락하고 있었다.
그러나 투표 1주일을 앞두고 실시된 TV토론 이후에는 의외로「카터」에 대한 실망이 커진 대신「레이건」에 대한국민들의 의구심이 불식되고 우유부단한「카터」보다는 능력은 미지수이지만「레이건」에게 한번 기대를 걸어 봄직하다는 유권자들의 마음이 움직여「레이건」으로서는「결정적인 전기」를 마련한 셈이다.「카터」가 마지막으로 기대를 걸었던 20%이상의 부동표세력도 결국은 TV토론과 인질사건의 실망이후 완전히「레이건」쪽으로 기울었고 아예 투표장에 안 나가는 민주당원들을 끌어내려는「카터」의 호소도 불발이 되고 말았다.
일이 안되려니까 날씨마저「레이건」편이어서 투표 당일은「카터」가 우세했던 동남부지역에서만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국내외적으로 4년간 큰 시련을 겪었던「카터」는 결국 1기 대통령으로 끝났다.【워싱턴=김건진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