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경이적 국제경쟁력…원천을 파헤친다-양복 입은 「병정」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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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벨」이 울리면 즉시 일손을 멈추고 퇴근하는 것이 아니라 하던 공정을 완전히 마친 후 퇴근토록 한다-.』 일본「소니」가 미국「캘리포니아」에 「컬러」TV공장을 세우면서 내건 주요 경영 지침의 하나다.
일본기업과 미국기업의 가장 큰 차이는 아마 이점 일 것이다. 근로자들의 사고방식과 일에 대한 애착에 현격한 거리가 있다.
퇴근 「벨」이 울리기가 무섭게 일손을 놓으며 초과 근무수당을 요구하는 것이 미국근로자들이라면 하던 일은 마저 끝내고 퇴근하는 쪽이 일본근로자들이다.
한쪽은 합리적이라고 주장하는데 반해 다른 한쪽은 기꺼이 하는 일이니 만큼 미덕이라고까지 여긴다.
일본의 근로자들은 저마다 회사를 자기회사로 생각하고 일한다. 미국 기업인들이 일본기업을 둘러보면 일본에서 잘되는 품질관리(QC)조직이 왜 자기네들은 안되고 있는가를 금방 깨닫게 된다. 『노동의 댓가로 돈을 받고 있을 뿐』이라는 개인주의와 『참가의식과 무형의 보수』를 기조로 하고있는 집단주의적 사고방식의 차이인 것이다.
이같은 집단주의의 사고방식이 잘못되면 무서운 군단주의로 변하기도 하지만 기업경영에서는 열렬한 애사정신의 모체가 됐다.
종업원을 뽑을 때도 능력보다 집단에의 귀속도를 더 따진다. 무엇보다도 충성스러워야하는 것이다. 근로자들도 한번 정한 직장은 평생의 직장으로 안다. 서구에선 종업원들이 회사를 계약에 의한 노동의 제공 장소 이상으로 보지 않는데 비해 일본에선 회사가 바로 자기의 온 세계다. 사생활을 기꺼이 희생함은 물론 때로는 목숨까지 기꺼이 바친다.
구미의 기준에서 보면 「록히드」사전 등에서 보는바와 같이 회사의 명예에 흠이 갈까봐 자살까지 하는 일본 종업원들의 행위가 무척 바보스럽게 보일지 몰라도 일본의 기준으로 보면 그것이 당연하고 또 미덕인 것이다. 일본근로자들은 집단에 폐를 끼치는 일을 가장 수치로 여긴다. 일에 대한 악착스러움이나 근면도 모두 그런데 바탕을 두고있다.
직원 채용에 있어 서구 기업들은 「레디·메이드」된 일반적인 유자격자를 뽑는다면 일본기업들은 물들지 않은 신품을 더 원한다. 교육을 통해 자기회사에 딱 맞는 형으로 키워 나가는 것이다.
교육을 통한 가장 중요한 교훈은 개인의 이익보다 회사의 이익을 앞세우게 하는 것이다.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곧 단합된 힘의 원천이 된다.
서양사람들의 눈에는 다소 우스꽝스럽게 보일망정 우루루 모여 아침조예나 직장체조를 벌이는 따위도 이같은 충성심과 단결심을 배양하는 교육의 일환이다.
일본기업의 경영자들은 장기계획을 세우는데 능하다. 당초 서구기업과의 격차가 워낙 커 이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전략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시적인 손질이나 과오는 별 문제삼지 않는다. 최고 경영자들도 적자가 났다고 해서 해고를 당하는 일은 드물다. 장기적인 평가를 중요시해서뿐만 아니라 「생애직장」이라는 기본원리는 그들에게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경영자들에 대한 신분보장은 장기계획을 소신껏 밀고 나가게 했고 과감한 설비투자를 가능케 했다.
그해 그해의 손익계산서에 급급한 나머지 전전의 낡은 기계를 그대로 써오다 결국 신일본제철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던 「유·에스·스틸」의 경영층들이 볼때는 여간 부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일본기업의 또 다른 강점은 정부와의 긴밀한 협조관계다. 외국 기업과의 경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언제라도 정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다. 「엘리트」들이 모인 경제관청은 「일본주식공사」의 기획실 노릇을 한다. 민간기업에서도 그들을 신뢰하여 권고를 순순히 받아들인다.
또 민간기업끼리 분쟁이 나면 법으로 시비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중재에 나선다.
정부자신부터 정경분리를 내세워 기업들의 세계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했다. 국내적으로도 서구의 정부들이 일반대중과 근로자의 편이라면 일본 정부는 경쟁의 승리를 위해 다분히 기업 편에 섰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일본기업의 경영은 정부·기업·근로자가 한데 뭉친 총력전을 펼쳐왔다.
미국이 뒤늦게나마 일본 「스타일」의 종합무역상사 설립을 서두르고 있는 것이나 일본경제기획청과 같은 기구 설립을 검토하게 된 것도 바로 이런 일본식 총력전 체제의 「노·하우」도입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근대화에 뒤늦은 일본은 이제까지 추수모방에 안간힘을 썼으나 앞으로 모방을 당할 입장인 것이다. 단순히 제품을 만들고 수출하는데서 벗어나 자기네 특유의 경영기법과 자본까지 한데 묶어 세계시장을 석권하기에 이르렀다.
소위 다국적 기업으로서의 해외투자는 최근 5년 동안 갑절로 늘어 79년에는 3백30억「달러」를 기록했고 85년께는 또 갑절이 넘는 7백9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허먼·칸」은 일찌기 21세기는 일본의 시대가 될 것이라 예언했는데 지금까지는 비슷하게 맞아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장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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