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5)제 70화 야구에 살다(5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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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스타」장훈
장훈이 모국을 첫 방문한 58년은 서울운동장 야구장이 중축 공사중이어서 경기는 육상 경기장에서 벌어졌다.
「오오사까」(대만)의 야구 명문「나니와」(낭화)상고의 강타자인 장훈은 이미 국내에 잘 알려져 있던 터라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매스컴」은 물론 「팬」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는 식욕이 대단해 갈비 3O대를 거뜬히 해치우는데 우선 놀랐다.
체격과 어깨가 좋은데다 주력도 뛰어 났으며. 「프리·배팅」을 할 때 북쪽 「포플러」나무를 훌쩍 넘기는 강타력에 또 한번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이 때만해도 그는 힘에 의한 야구를 하는 세련미가 없는 미완의 대기였다.
관중들이 워낙 『장훈이』를 떠들어대자 이를 의식한 듯 큰것만 때리려다 「플라이」가 많이 나왔다.
그렇지만 오른손 끝의 두 손가락을 어릴때 화장으로 거의 쓰지 못하면서 장타를 휘두르는덴 그저 경이롭기만 했다.
장훈은 중견수였고 배수독은 우익수겸 투수였는데, 수비에서 이들의 「백·홈」이 어찌나 좋은지 국내 야구계에 큰 교훈을 주었다.
장훈의 모국방문은 일본에 있던 많은 재일동포 야구선수들에게 조국을 인식시키는 계기가됐다.
따라서 배수찬 김성근 한광홍 박정일 등이 귀화, 대표선수가 됐고 심지어 「프로」야구에있던 김영덕 김동률(이장남해) 김호중(판곤)등이 차례로 국내 실업야구계에 얼굴을 내밀어 국내야구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장훈이 모국 방문경기에서 「팬」들의 환대를 받고 조국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어 끝내 일본귀화의 유혹을 뿌리친 것은 의의가 깊다고 하겠다.
그래서 전 「롯데·오리온즈」감독인 「가네다·마사이찌」(김전정일)가 투수로서 4백승을 올려 일본 「프로」야구에 신기원을 이룩했으면서도 일본에 궈화해 국내에서 각광을 못받은 반면 장훈은 올해 일본 초유의 3선 안타 기록으로 해외 「프로」선수로선 처음으로 훈장까지 받았다.
교타자 장훈은 중국계인 「홈런」왕 왕정치와 비교가 된다.
둘은 똑같이 면년 「프로」에 뛰어들었는데 성격에서 너무나 대조를 이뤄 「팬」들로부터 상이한 반응을 받았다.
온순하고 겸손한 왕정치가 어린아이를 비롯한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반면 과격하고 거친 장훈은 「트러블」을 자주 일으켜 「팬」들과의 싸움은 물론 욕도 많이 먹었다.
장은 「고오시엔」(갑자원) 대회에 한번도 출전 못했지만 왕은 「와세다」(조도전) 보업고 2학년때 우승하면서 2개의 「홈런」을 폭발시켜 주가를 올렸다,
장은 고교때 폭행사건으로 일본 「프로」야구의 대명사인 「자이언트」(거인)「팀」의 입단을 거부당해 1백만엔의 계약금으로 「도오에이」(속영) 「플라이어즈」에 입단했다.
그러나 왕은 58년에 「릿꾜」(입구) 대학을 졸업하고 「자이언트」에 입단한 「나가시마」(장도) 보다도 2백만「엔」이 많은 1천9백만「엔」에 계약했다.
그렇지만 장은 입단 첫해부터 맹활약, 「퍼시픽·리그」에서 신인왕 수장과 함께 3년만에 4번 타자로 기용됐다.
반면 왕은 초반에 타격이 부진, 「례귤러」로서도 불안정했다.
장은 고교때엔 타격할 때 아래에서 위로 올려치는「어퍼·스윅이(골프·스윙)을 했으나 동영「팀」에서 「마쓰끼」(송목= 명지대 출신으로 판압「팀」이 초대주장을 한 강타자) 개인 「배팅·고치」로부터 「폼」을 고쳐 대성하게 됐다.
장은 「마쓰끼」로부터 수평으로「배트」를 휘두르는 「레벨·스윙」을 익히면서 90도 각도의 어느 곳으로도 때릴수 있는 「스프레이·히터」로 『안타제조기』의 별명을 얻게됐다.
또 왕은 타격에서 「타이밍」이 늦어 장타이긴 하나 타율이 워낙 나쁘자 거인 「팀」에서「아라까와」(황천-조도전대 출신으로 「롯데·팀」외야수로 활약한 강타자)를 개인 「배팅·코치」로 맞으면서 정확한 「홈런」타자로 이름을 날렸다.
왕은 이때 유명한 「외다리 타법」을 개발, V자「스윙」(위에서 내리쳤다가 다시 올려치는 타법)으로 「홈런」타자가 됐다.
왕은 입단 3년째인 61년엔 「홈런」38개로 첫 「홈런」왕이 됐는데, 90도 각도로 때릴 수 있는 장과 마찬가지로 좌타자이면서 항상 우중간쪽으로만 「볼」을 때렸다.
왕은 최근 거인 「팀」이 야구감독에서 해임, 일본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나가시마」와 함께 주전타자로 「ON포」를 구축, 거인이 7O년대 「저팬·시리즈」에서 9연패하는데 결정적 수훈을 세웠다.
장훈과 왕정치는 일본 「프로」야구에서 전인미담의 많은 기록을 남겼다.
장훈은 올해생애 통산 3천 안타의 대기록을 세웠으며 지난 7O년엔 타율 3할8푼3리로 일본 최고기록을 수립했다.
또 왕정치는 올해도 「홈런」30개를 때려 8백 68개로 미국의 「행크·에런」(7백55개)을 제치고 세계의 「홈런」왕으로 강타를 자람하고 있다.<계속>

<49회의 「한일은에서 활약한 이선덕」은 농협으로 바로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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