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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경이적 국제경쟁력…원천을 파헤친다-응용의 천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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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차대전 초기만 해도 연전연승하던 일본 연합함대는 말기가 되자 연전연패했다. 야간 해전은 일본 해군이 자랑하던 장기였는데 함대끼리 포격전이라도 벌어지면 얻어맞는 쪽은 일본이었다.
캄캄한 밤중에 정확히 날아드는 미측의 포격술을 보고 일본지휘관들은 혀를 내둘렀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미측은 이미 그때 「레이다」를 장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기술의 차리는 갈수록 두드러져 결국 일본은 두 손을 들고 말았다. 2차 대전을 한번 치러보고 일본은 기술격차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통감했다. 그 뒤 일본은 절치부심, 기술도입에 전력을 기울었다.
기술격차는 쉽게 좁혀지는 것이 아니어서 기술의 혁신 시대로 일컬어지는 60년대에 들어서도 일본의 기술은 미국이나 「유럽」으로 부터의 일방적인 도입에만 전적으로 의존했다.
세계시장을 휩쓸고 있는 오늘날까지도 일본기업의 독창적인 발명은 별 내놓을 만한게 없다. 사실 「트랜지스터」도 반도체도 어느 것하나 일본기업들이 발명한 기술은 아니다. 반도체 산업의 경우 한때는 총 매상액의 10%나 되는 특허료를 미국기업들에 물어야했다.
그러나 일본기업들은 원천기술을 들여다가 그것을 응용하여 제품화하는 기술은 고묘할 지경이다. 발명하는 것과 그것을 양산화 할 수 있는 생산「시스팀」을 개발하는 것은 별개의 것인데 일본은, 응용면에서 특히 천부적 능력을 보이고 있다. 구미에서 발명한 기술이 일본에서 개량되어 구미로 다시 수출된 사례가 한 둘이 아니다.
전자업계가 대표적인 예다. 미국이 고가의 「트랜지스터」를 군용으로 개발해 소량으로 생산하고 있을때 일본「소니」는 그것을 「라디오」에 응용해 「트랜지스터·라디오」를 만들어 냈고 수년 후에는 생산량이나 기술면에서 미국제를 앞서게됐다. 「컬러」TV도 마찬가지. 처음「컬러」TV를 미 RCA사가 발명했지만 지금 세계시장을 휩쓸고 있는 것은 「소니」「내셔널」등 일제다.
5년전 「디지털」시계가 나오면서 미국의 시계「메이커」들은 반도체 기술을 내세우면서 세계시계시장을 석권할 절호의 기회라고 자신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결과는 「세이코」「카시오」「시티즈」등 일본시계 회사들의 뒤꽁무니를 쫓기가 바쁜 실정이다.
오히려 「디지털」에 힘입어 일본시계생산은 시계의 나라 스위스까지도 간발의 차로 따라붙고 있다.
그러나 미국기업들이 두려워하고 있는 근본적인 초점은 기술을 뒷받침하는 일본기업의 왕성한 설비투자다.
미국의 대기업들이 세계의 주인임을 자처하며 제 꼬리를 잘라먹고 있는 동안 무서운 돌진력으로 쫓아온 일본기업들이 어느덧 턱밑을 위협하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20년 이상된 공작기계 사용율을 따져보면 일본은 18%인데 반해 미국은 34%에 이르고 있다. 그만큼 미국기업들은 낡은 기계를 쓰고 있는 것이다.
세계최대철강회사였던 「유·에스·스팁」이 신 일본제철에 결국은 무릎을 꿇고만 사실은 이 같은 미국기업의 고민을 단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신일본제철은 효율 높은 대형고도 등 최신 설비를 갖춘데 비해 「유·에스·스팁」은 3분의1 가까이가 낡아서 제 효율을 내지 못하고있고 대형 고도는 불과 몇 개에 지나지 않는다. 이 같은 설비의 차이 속에서 승부는 뻔한 것이었다.
2차 대전 후 승전국인 미국은 기준설비가 바닥 났기 때문에 대형설비투자는 거의 하지 못한데 비해 일본은 패전이후 백지상태에서 가장 경제성 높게 최신기계와 기술을 채용할 수 있었다.
「유·에스·스틸」은 결국 지난해 4·4분기동안 5억6천만「달러」의 적자를 기록, 세계 최고의 적자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으며 장차 예상되는 국제적인 산업조정 과정에서 언제일본에 먹힐지 모르는 풍전등화 신세가 되어 버렸다.
미국산업의 척추라고 하는 자동차 산업에조차 불안은 마찬가지다. 현재 매상고 면에선 미국이 앞서고 있지만 설비·노동생산성·자본장비율 등 장래를 점치는 갖가지 지표들은 일본이 유리해질 것으로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가령 일본 자동차는 종업원 1인당 생산이 74년의 9·5대에서 78년에는 14·8대로 늘어난 반면 미국은 같은 기간 11·2대에서 13·2대가 되었을 따름이다.
특히 석유파동에 따른 소형차 수요 급증에 따라 일본세가 더욱 기승을 부리자 「포드」는 급기야 「도요따」에 합작의 손을 내밀게 까지 된 것이다. <이장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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