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경제 읽기] 건설만 있고 민생·혁신이 빠진 부양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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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7호 18면

“정부는 지속적인 내수진작 대책으로 설비투자 및 투자 촉진, 신산업 육성 등 새로운 성장 동력 확충을 위한 인프라 구축, 청년 일자리 창출 등 중산서민층 생활 안정과 지역 불균형 해소 및 농업·서비스업 중장기 대책을 중점과제로 추진하겠다.”

꼭 13년 전인 2001년 8월 16일 ‘준비된 김대중 대통령’의 진념 경제부총리가 내놓은 경기부양 정책의 윤곽이다. 성장 인프라를 위한 내수 촉진과 확장적 재정으로 요약된다. 당시 정부는 6월 추경(5조1000억)과 8조원의 예산집행 등으로 14조원의 재정지출 확대효과, 성장률로는 0.9%포인트 정도의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준비된 여성 대통령’의 2기 최경환 경제팀이 7월에 내놓은 경제활성화 방안, 소위 ‘최경환노믹스’도 대충 비슷하다. 물론 형식적 구색은 훨씬 다양하다. 첫째 꼭지가 ‘내수 활성화’고, 둘째 꼭지가 ‘민생 안정’이며, 셋째 꼭지가 ‘경제혁신’이다.

기업소득 과세, 불만만 커질 것
그런데 요즘 버즈워드(자주 언급되는 말)가 ‘민생’이고 ‘혁신’이다 보니 처방전에 넣기는 넣었으나 계획만 나열한 예고편 안내장 같은 느낌을 준다. 최경환 처방전의 핵심이자 13년 전 진념 대책과 외견상 가장 닮은 부분이 첫째 꼭지, 즉 내수 촉진과 확장 재정이다. 41조원 패키지로 구성된 최경환의 처방전 안에 재정은 12조원이다. 이 중 절반인 6조원이 (서민용)주택건설지원이다. 29조원의 금융처방전도 평택-익산 고속도로(2조6000억원), 수도권광역급행철도(3조1000억원), 및 평택호 관광단지(1조8000억원) 등 건설투자에 상당 부분 쏠려 있다. 건설투자에 집중하는 정도는 진념의 부양책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LTV-DTI 한도를 일괄 상향조정한 것도 따지고 보면 주택건설 경기를 부양하는 정책으로 봐야 한다. 부총리 스스로 ‘가 보지 않은 길’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진념 정책과 다른 점도 매우 많다.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 ‘가계소득을 위한 기업증세’다. 진념은 투자활성화와 서민의 내수진작을 위해 봉급생활자(600만 명)와 과세대상 자영업자(50만 명)의 소득세를 10% 정도 경감해줄 필요가 있다고 봤다. 그러나 최경환은 기업소득의 노동소득분배와 배당을 촉진하기 위한 기업증세를 검토하고 있다. 기업소득이 가계소득으로 흘러들어가도록 인센티브를 주거나 아니면 과세하겠다는 뜻이다. 진념이 직접적인 소득세를 인하했다면, 최경환은 기업의 배당소득에 과세해 간접적으로 소득을 올리겠다는 거다.

그럼 최경환의 처방전이 경제활성화에 효과가 있을까? 첫째, 주택·도로·철도와 같은 인프라 건설로 경기를 부양하는 것은 장기적인 효과는커녕 단기적 효과도 의문시된다.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진념의 2001년 경제대책은 2002년에는 성공적으로 보였다. 성장률은 2001년 4.5%에서 2002년 7.4%로 급등했다. 그러나 건설투자는 2001, 2002년에 각각 6.5%와 6.4%로 거의 변화가 없다. 오히려 민간소비가 같은 기간 5.7%에서 8.9%로 증가했고 설비투자도 -8.8%에서 7.0%로 상승했다. 문제는 2003년이다. 성장률은 2.9%로 추락했고 민간소비와 설비투자는 각각 -0.5%와 -0.9%로 감소했다. 그 이유는 2002년의 7.4% 성장률 회복이 정부의 인프라 투자 활성화 때문이 아니라 진념의 히든카드, 즉 2001년 네 차례 금리인하(5.25%→4.0%)와 2000, 2001년의 신용카드 보급 확대(복권제도, 소득공제, 길거리 회원 모집)로 인한 민간소비의 과열 때문이었다.

일자리보다 기업 생존이 더 문제
둘째, 정규직 전환에 대한 부분적인 임금보조로 600만 비정규직의 실질적인 감소 효과를 낼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더구나 1800여 만 명의 근로자의 소득이 높아지지 않는 한 민간소비의 증대는 기대하기 어렵다. 셋째, 기업소득에 대한 과세를 통해 노동소득을 올린다는 착상도 기업의 불만만 살뿐 크게 기대할 것이 없어 보인다.

경기 침체의 근본 원인은 민간기업의 경쟁력 약화와 가계소득의 정체다. 잘 나가는 몇몇 기업을 빼면 거의 모든 중소·대기업과 중소자영업자의 생존 자체가 점차 위태롭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일자리도 문제지만 기업생존이 더 큰 문제다. 40여만 개 기업 및 600만 자영업자가 생존하지 못하면 1800만 근로자의 실질소득이 정상적으로 증대되기는 어렵다. 민영화, 공기업 혁신, 규제완화 못지 않게 기업의 자본력과 기술력 확충이 시급하다. 정부의 역량이 집중돼야 할 부분은 기업의 자본력 확충과 기술혁신이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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