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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해방군가 지은 정율성 … 중국, 탄생 100년 재조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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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중국에서 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한 한국 태생 정율성(鄭律成·사진)의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행사를 대대적으로 열고 있다. 그는 1930~40년대 항일 전쟁과 국공내전 때 중국 병사들이 즐겨 부르던 ‘팔로군 행진곡’을 작곡했다. 중국인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이 노래는 인민해방군가로 공식 지정돼 국가인 ‘의용군 행진곡’ 다음 가는 대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 노래의 작곡자가 한국계란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난 그는 1930년대 중국으로 건너가 항일 운동에 투신했다. 마오쩌둥(毛澤東)이 대장정 이후 혁명 근거지로 삼았던 옌안(延安)에 합류해 활동한 그는 ‘팔로군 행진곡’ 외에도 ‘옌안송’ ‘팔로군 군가’ 등 수많은 곡을 남겼다. 2009년 중국 건국 60주년 행사에서 중국 정부는 정율성을 ‘신중국 건국에 공헌한 영웅 100인’에 선정했다. 76년 사망한 그는 베이징의 바바오산(八寶山) 혁명열사릉에 묻혀 있다. 정율성의 부인 딩쉐쑹(丁雪松)은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의 양녀이자 비서였으며 중국 최초의 여성 대사로 네덜란드와 폴란드에서 근무했다.

 정율성이 주목 받은 계기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발언이었다. 시 주석은 지난달 방한 당시 서울대 강연에서 “중국 인민해방군가의 작곡자가 된 정율성 선생 등 양국 국민 간 우호 왕래, 상부상조의 전통은 유래가 깊다”고 말했다. 이 발언에 힘입은 한·중 영화인들은 정율성의 생애를 재조명하는 영화를 공동 제작하기로 했다. 중국 문화부 등 정부 기관과 인민해방군은 지난달 19일 베이징의 국가대극원에서 정율성을 기리는 음악회를 대대적으로 개최했다.

 7일엔 정율성의 음악들이 국악기의 연주로 베이징에 울려 퍼졌다. 광주시립국악관현악단이 베이징을 방문해 중국 관객들 앞에서 친선 음악회를 연 것이다. 이 자리에선 정율성이 소수민족의 전래 음악을 토대로 만든 오페라 ‘망부운’과 가곡 ‘평화의 비둘기’가 연주됐다. ‘혁명 운동가’ 정율성이 아니라 아름다운 선율을 남긴 ‘음악가’ 정율성을 재조명한 것이다. 음악회장에는 인민해방군 소속의 저명 서예가 인자오룽(殷昭龍)이 찾아와 ‘한·중 우의여 영원하라(中韓友誼長存)’고 쓴 작품을 선물하기도 했다.

 정율성에 대한 중국에서의 높은 평가에 비해 고국인 한국에선 잊혀진 존재에 가깝다. 광주에서 10여 년 전부터 기념사업을 펼쳐온 것이 거의 전부라 할 수 있다. 여기엔 이데올로기의 차이가 작용하고 있다. 그가 중국 공산 혁명에 참여했고 북한에서 활동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정율성은 45년 일본이 항복한 뒤 팔로군 휘하의 조선의용군과 함께 북한으로 가 황해도 선전부장 등으로 일하며 ‘조선인민군 행진곡’을 작곡했다. 정율성 부부는 50년까지 북한에 체류하다 저우 전 총리의 부름에 따라 중국으로 돌아갔으며 정율성은 이때 중국 국적을 취득했다.

 7일 친선 음악회를 관람한 정율성의 딸 정샤오티(鄭小提·71)는 “고향에서 오신 분들이 아버지의 음악을 연주해 감개무량하다”면서 “고국에서 오랫동안 아버지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건 어쩔 수 없지만 한·중 관계가 긴밀해지면서 그런 부분도 바뀔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광주시립국악관현악단이 한국전에서 국군과 싸운 북한 인민군의 군가를 작곡한 사람을 기리는 음악을 연주하는 게 바람직한 일인지 의문”이라는 비판을 제기했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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