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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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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란」의 공세가 둔화됨에 따라「페르시아」만의 인접국가들이 이 분쟁에 가담하게 되어 전쟁이 확대될 가능성이 커가고 있다는 일부 보도가 있었다. 귀하는 이 전쟁이 실제로 크게 확대될 것으로 보는가.
▲별로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 인접국가들은 이 분쟁에 말려들지 않으려는 강한 요구를 갖고 있다. 「이라크」쪽으로 기운 나라도 지원을 최소한으로 억제하고 있다. 미국도「사우디아라비아」가 이 전쟁에 가담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분명히 했다는 점도 흥미롭다.「요르단」의 경우는 사실「이란」-「이라크」분쟁 자체보다도「시리아」와의 적대관계 때문에「이라크」쪽을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요르단」은「이라크」지원을 공언했으면서도 앞으로 군대를 전선에 투입하지는 않으리라는 이야기인가.
▲현재로선 그럴 필요조차 없다고 본다. 「이라크」는 제한전쟁을 하고있기 때문이다. 「이라크」는 수로를 확보하고「이란」이 「이라크」내의 「쿠르드」족을 선동하는 것을 중지시킨다는 제한된 목표를 위해 병력의 일부만을 투입하고 있기 때문에 외국군대를 동원할 필요가 아직 없다.
-확전이 안 된다면 권투선수처럼「이란」-「이라크」가 다같이 기진맥진해질 때까지 장기소모전을 하게되는 경우를 상정해 봄직한가.
▲「이라크」는 기진맥진해질 때까지 전쟁을 계속하지 않을 것이다. 「이라크」의 목표가 수로확보이기 때문에 현재 점령한 다른 지역은 후에 협상할 때 압력수단으로 쓰려는 것이다.
「이란」의 경우는 다르다. 「이라크」의 침공은「이란」국민의 자존심을 짓밟고 치욕을 느끼게 했기 때문에「이란」안의 모든 세력들은 조그만치도 양보하지 않도록 서로가 압력을 가하게 될 것이다. 이 때문에「이란」의 경우 군사적으로 기진맥진할 때까지 싸우게 될 것 같다. 그래서「이란」에 앞으로 어떠한 정권이 들어선다 해도「이란」이 잃어버린 땅을 되찾을 때까지는 이 새로운 분쟁의 씨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번 전쟁이 장기전화 할 경우 다같이 내정이 불안한「이란」과「이라크」에는 전쟁의 책임을 묻는 정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일부 견해를 어떻게 보는가.
▲「이란」의 경우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혁명으로 동요된 국내세력의 갈등을 단결시켜 주었다. 혁명중의 나라를 외부에서 침략한다는 것은 극히 위험하다는 점은 「프랑스」혁명이나「러시아」혁명 때의 외국간섭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보면 안다.
혁명을 밖에서 공격하면 혁명을 교란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응집시켜준다. 거기다가 영토까지 요구하면 혁명지도자들은 그것을 단결의 좋은 구심점으로 삼게된다. 이런 점에서「이라크」가 수로를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나선 것은 비현실적인 전쟁목표 같다. 「이라크」의 경우도 모든 신생국과 마찬가지로 이번 전쟁 국수주의를 자극했다.
「호메이니」가 이제는 종교보다 민족의 단결을 부르짖듯이「이라크」의「사담·후세인」도 이 전쟁을 국민간의 인종적·종교적 분열을 해소하는데 이용하고있다.
그러나 그가 국민들에게「이란」침공의 결과를「승리」라고 설득시킬 수 있느냐가 문제다. 그렇지 못할 경우 그를 무모한 전쟁을 시작한 책임자로 모는 세력이 나올 수 있다. 특히「이라크」처럼 민주적 정통성이 없는 정권일 경우는 더욱 그렇다.
-강대국의 개입가능성을 이야기해보자. 현재로서는 미국이나 소련이 다같이 중립적 입장을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취하고 있는데 어느 한쪽이 완패할 가능성이 높아져도 그 중립이 유지될 것 같은가.
▲우선 「이란」이나「이라크」어느 쪽도 완패하는 경우는 없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이 지역은 석유가 생산되는 지역이라는 점과 강대국이 개입할 가능성, 이 두 가지 점 때문에 늘 국제적 파문을 불러일으켜 왔다. 지금까지 미국과 소련은 서로 불간섭원칙을 확인했으면서도 전혀 다르게 이 분쟁을 대해왔다. 미국은 어느 한쪽에도 무기나 부품을 제공하지 않고 되도록 멀리해왔다. 그러나 소련은 태도가 모호하다. 그들은「이라크」에 무기를 제공해 왔으면서「이란」에도 무기원조를 제의했다.
다시 말해 소련은 불간섭보다는 이 분쟁을 조종하려 하는 것 같다. 소련은 분쟁사태가 유동적인 틈을 타서 이 지역에 진출할 기회를 엿 보는 것 같은데「이란」이 문제다. 현재로선 소련무기를 거부하고 있지만 고립무의하기 때문에 언제 그걸 수락할지 모른다.
역으로「이란」이 인질문제를 미끼로 미국과 장비구입 흥정을 제의해 올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서방의 입장으로 볼 때「이라크」가 결정적 승리를 거두는 것은 불리하다. 「이란」이 궁지에 몰려 소련과의 화해만이 돌파구라고 생각하는 지경으로 가서는 안 된다. 「이라크」가 승리하는 것은 사실 소련이나 주변국가들에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란」은 석유통로인「호르무즈」의 항해권을 보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전쟁이 장기화하고「이란」이 절박한 상태에 빠지면 이 통로에 대한 위협이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 미국이나 서방이 이 통로를 보호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해야 된다고 보는가.
▲「호르무즈」해협은 국제적으로 너무나 중요한 수로이기 때문에 만약「이란」이 이를 봉쇄할 경우 전쟁은「이란」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되게된다. 모든 서방의 석유소비국들이「이란」의 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수로가 갖는 중요성 자체가 이 수로에 대한 공격을 억제하는 힘이 된다고 본다.
미국이 제창한 서방5개국연합함대 창설 안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미국의 단일함대라면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 다국적 함대를 창설하는 것보다는 당사국들의 자기이익에 호소하고 이 수로를 서방이 얼마나 중시하는가를 행동으로 보임으로써 위험이 오지 않게 하는 것이 최상책일 것 같다.
-이번 전쟁이 갖는 동서간의 전략적 의의는 무엇인가. 이 전쟁이 어떻게 끝나든 간에 이를 계기로서 서부 안보에만 전념하던 서방제국의 안보적 관심을 중동과 기타 분쟁지역으로 돌리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겠는가.
▲「유럽」의 안보의식은 이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도 그런 방향으로 전환되어왔다. 「유럽」의 안보가「나토」지역의 대소련방위만이 아니라 중동의 안보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중동의 안보는 또 한국·일본 등의 안보와도 직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이미 하나의 경향이 되어있다.
중동에 국한해서 볼 때는 중동분쟁에 새로운 요소, 즉「이란」국민의 치욕감과 원한이라는 새로운 분쟁요소가 가미되었다는 점도 지적해야 될 것 같다.
이 전쟁의 또 하나 중요한 결과는 석유가격의 인상이다. 「이란」과 「이라크」의 파괴된 석유시설을 복구하려면 막대한 돈이 들텐데 그걸 석유값 인상으로 메우려 들것은 확실하다. 거기다가 다른 산유국들이「이란」과「이라크」가 생산 중단한 석유량을 메우기 위한 석유증산을 하지 않으려 하면 석유공급까지도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이 전쟁은 어떻게 끝나겠는가.
▲세 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 째「이라크」가 평원지대를 점령하고 「이란」이 산악지대를 점령한 상태에서 잠정휴전을 하고「이란」이 군사적으로 강해질 날까지 불안한 평화가 계속되는 경우다.
둘째「레바논」과「이스라엘」관계처럼 또 남북「예멘」, 「모로코」와 서「아프리카」관계처럼 끝없이 전쟁이 계속되는 경우다.
세 째 중공이「베트남」에 대해 하려한 것처럼「이라크」가「이란」에 대해 응징만 하고 원상복구한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하는 경우다. 세 번째 경우가 가장 바람직할지 모르나 사실 가장 가능성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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