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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관 확대 경영」억제에 주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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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번 발표된 「기업체질 개선방안」은 74년 5·29조처 (금융여신과 기업소유집중에 대한 대책)의 확대·강화판이라 볼 수 있다. 5·29조처는 일부 재벌기업들이 은행 빚으로 기업을 지나치게 키워 경제가 몇몇 기업에 몰리고 그 내실이 허약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인데 별 신통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어떻든 성장을 서둘러야 한다는 정책기조 때문에 차금 위주의 확대경영이 일반화되었다. 특히 수출 「드라이브」와 성급한 중화학건설이 이를 더욱 부채질했다.
이제까지도 「5·29조처」에 의해 기업 「그룹」들은 모두 주거래은행의 관리아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노력을 다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성장제일주의 「무드」에 밀려 건전한 경영보다 확대경영이 우선되었다. 때문에 기업의 재무구조는 기업사채 동결 등의 조처를 취했던 8·3조처전 수준으로 나빠지고 이것이 최근의 불황으로 더욱 가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면서도 기업들은 빚에 의한 기업확장과 흡수를 계속하여 계열기업 수가 74년보다 오히려 2백64개나 늘었다.
신설했거나 새로 사들인 기업이 3백19개사이고 처분한 기업은 55개에 불과했다. 몇몇 「그룹」에 의한 기업의 소유집중이 두드러졌다. 자연 은행돈도 이들 기업들에 편중 대출되었다.
또 그토록 독촉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부동산 처분도 시원치 못했다.
6백63개 기업이 갖고 있는 땅은 총 1억7천9백24만평이나 된다. 이중 비업무용 부동산은 2.3%인 4백13만평에 불과하지만 업무용 땅이 모두 업무용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기업의 부동산 처분이 부진한 것은 팔기가 아까워 꺼린 것도 한 원인이지만 잘 팔리지도 않고 세금도 무섭고 은행대출시 담보용으로 필요하다는 이유도 있다.
그 동안 기업에 대해 부동산 처분을 재촉하면서도 은행에선 담보로 땅을 요구한 것이 사실이었다.
또 이런 틈을 타고 동명목재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회사는 껍데기로 남겨놓으면서 기업주나 그 가족들은 노른자위 부동산을 갖고 있는 사례도 많았다. 때문에 정부는 이번 기업 부동산뿐 아니라 기업주와 그 가족이 갖고 있는 것까지 처분하며 기업에 넣도록 할 방침이다.
기업주의 가족 부동산까지 강제로 팔게 하여 기업에 넣도록 한다는 것은 사유재산 보호와 상충되지만 그보다는 기업 재무구조 개선이 더 우선한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업 부동산의 처분조처는 토지의 공개념 확대와 땅이 없어 큰 곤란을 받고 있는 서민주택 건설문제와도 연관된다.
특히 서민용 택지는 정부기관에서 강제 수용하는 방향으로 검토되고 있다.
정부는 만약 이번에 부동산을 은폐하거나 팔지 않을 땐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란 경고를 하고 있다.
이번 대책은 여러 부처가 관련된 개혁적 조처이므로 국보위에서 주관하여 했으며 이미 사전조사를 상당히 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기업별로 「랭킹」 30위까지는 이미 조사가 끝나있다고 한다. 정부는 당초 5∼6명의 대소유주를 집중적으로 조처할 강경한 방침을 세웠다가 보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이번 조처는 기업정화의 차원에서 다뤄지므로 종래와는 달리 강도가 높다.
요는 새 시대에 부응하여 기업인들은 사심을 갖지 말고 개인 부동산이라도 팔아서 기업을 살찌우라는 것이다.
또 기업 수를 너무 늘린 것도 정리하고 기업 경비를 사용으로 쓰는 것도 규제키로 했다.
또 외부감사의 제도화, 회사정리 악용방지 조처 등도 병행된다.
내 기업이라 해서 사유물로 생각지 말고 국가관을 갖고 애국하는 자세로 하라는 뜻이다. 이번 조처는 정부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하는 것이므로 기업들도 과거와 같이 어름어름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과거 「5·29조치」도 처음엔 비상한 각오로 했다는 점을 감안, 그것이 왜 중도에서 흐지부지 되었나를 반성해 보고 그 원인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
토지를 내놓아도 실수요자는 구매력이 없다든지, 고도성장정책에 맞추기 위해 기업도 무리를 안할 수 없다든지, 본원적으로 자본축적이 없는 우리 나라에서 과연 차금경영을 지양할 수 있는지, 또 이 조치가 기업의욕과 경제에 큰 충격을 주어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를 더욱 어렵게나 하지 않을지 하는 문제 등에 대해선 깊은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또 외국투자가들이 밖에서 이런 혁신적 조처를 어떻게 볼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준비도 해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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