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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신화 속의 한국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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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일본 상고사연구에 있어 「한국」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고대사연구에 귀한 자료가 되는 신화에 있어서 한국은 일본신화의 발상과 형성, 그리고 전개의 전과정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신화 속에 나타난 한국에 대한 이해는 일본 상고사의 이해는 물론, 일본인의 대한의식의 뿌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단국대의 황패강 교수(국문학)는 최근 발간된 계간『한국학보』제2O집에 수록된 『일본 신화 속의 한국』이라는 논문에서 이 문제를 흥미 있게 다루고 있다.
현재 일본에서의 신화연구 추세는 문헌자료위주의 연구가 지배적으로, 가장 기본적인 자로는7,8세기에 만들어진 사서들, 그 중에서도 가장 대종이 되는 원전은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두 가지다.
일본신화에 나오는 한국의 구체적 예를 보면 다음과 같다.
▲누천오순 (건속수좌남명)=『일본서기』권1에 보면, 「무정」한 소천이 천계를 쫓겨나 하계로 내려와 신라국에 와서 살았는데, 어느 날 『이 땅은 내가 살고자 아니한다』하고, 동 (일본)으로 건너가 살았다. 그런데 소천은 천강시 가져온 수세를 한지에는 심지 않고 일본에 가지고 와서 심어 전 국토를 청산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 소천 신화는 우리의 환웅신화와 비슷한 성격의 것으로 소천에겐 문화영웅의 성격이 주어져있다. 그런데 얼핏보면 신라는 사람이 살거나, 나무를 심는데 부적당한 「탐탁치 못한 나라」인 것 같은 인상을 주지만 신라는 「금은국」으로 연금과 관련된 문화선진국이며 선진문화를 새로운 무대이자 미개국인 일본에 전해줬다는 의미로 문명사회로서의 신라의식이 들어있다고 봄이 타당할 것이다.
▲신공황후=신공의 남편인 중애가 신탁을 저버리고 신라정복을 하지 않았다가 신의 노여움으로 죽고 말자, 신공은 남편의 장례도 치르지 않고 신라를 공격해 정복에 성공하고 많은 인질과 보물을 얻었고, 이 소문을 들은 고구려와 백제까지도 심공에 항복해왔으며 귀국 후 덕신천황을 낳고 황태후가 되고 나서 비로소 남편을 장례 지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그런데 문제는 고대인의 의식상 가장 중요하고 신성스러웠던 사와 생의 문제등을 제쳐놓고까지 정벌을 강행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으로 신화가운데서 「규벌」을 배제할 때 신공설화는 훨씬 자연스러워지며, 신공의 신라정벌을 정벌 아닌 모향회귀지향으로, 수 없는 어려움을 무릅쓰고 행해진 신공의 신유지향은 모향에서 재생력을 얻기 위한 그녀의 근원적인 잠재의식에서 나온 것이라고 봐야할 것이다.『고사기』나 『일본서기』에 나오는 일본인의 「한국」에 관한 인식은 「천성에 순종치 않는 나라」로 부정되고 있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에게는 없는 고도의 문명국으로서 동경에 가까운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일본인들의 적대적 타자의식은 그 같은 동경을 허락지 않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퇴행·잠재화하고, 반면에 부순한 타자에 대한적대감과 혐오만이 역기능적으로 작용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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