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등거리외교』발판 닦아두려는 속셈|「비정치」서「의회차원」으로 변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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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본자민당의 AA연(아시아-아프리카문제연구회)소속 중·참의원 8명이 북괴정권창건일인 9일부터 평양을 방문하고있는 사실은 일본이 남북한 등거리외교를 본격적으로 추진하려는 신호로 해석 될 수 있어 한일간에 새로운 불씨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 방문단은 당 총무회장대리, 정조회부회장, 노동상을 거친 자민당내중진 「후지이·가쓰시」(등정승지) 중의원의원을 단장으로 했다는 점, 「후지이·가쓰시」의원이 북한의 정치인을 초청하겠다고 밝힌 점, 「이또」(이동정의)외상을 비롯한 일본정부측이 묵인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관심을 끌고 있다.
일본은 과거 북괴와「비정치적」인 교류는 유지하고 있었다. 72년 「다나까」(전중각영) 내각이 들어선 이후 무역분야의 소규모 교류가 정치를 제외한 경제·문화·「스프츠」 분야로 확대됐다.
일조의원연맹 등 친 북괴 단체가 생기고 사회당의원들이 평양을 드나들었으며 「우쓰노미야」(자도궁덕마)「구노」 (구야충치)같은 자민당 몇몇 의원들도 북한과의 왕래를 시작했다.
북괴 측에서도 73년 정준기 당중앙위원이 기자동맹대표단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한 이래 인민회의대표· 여성대표· 체육계인물들이 일본을 다녀갔다.
이때마다 일본정부는 이들의 방일목적을「비정치적」인 것이라고 못박았었다.
그러나 이번은 그 성격이 종래와는 다른 것 같다. 일본이 비록 정부수준은 아니더라도 의회차원에서 제한적인 정치교류를 북괴와 터놓으려는 시도로 보이는 증거들이 많기 때문이다.
일본은 지금까지 한반도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한국의 평화노력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한쪽으로 북한과의 비정치적 관계를 확대하겠다는 이중적인 정책을 추구해왔다.
이러한 입장을 일본측은 북괴를 고립상태에서 국제사회로 끌어냄으로써 한반도에서의 긴장을 완화하고 전쟁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해왔다.
일본이 이 같은 정책을 취하는 배경은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우선 72년 「닉슨」의 중공방문으로 「뒤통수를 얻어맞은」전철을 다시는 밟지 않겠다는 것이다.
올해 들어 「솔라즈」미 하원의원이 평양을 다녀갔고 전국무성대변인「트머스·레스턴」이 북괴를 최근 방문한 사실은 일본에 뒤통수를 또 한번 얻어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일본외교는「단기적」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예컨대 「닉슨」이 72년 중공을 방문한 후 79년 대사급 외교를 수립하기까지에는 7년이 걸렸다. 미국은 실질관계를 유지하면서 장기적 목표아래 한 걸음 한 걸음 정상관계로 나아갔다.
이에 비해 일본은「다나까」가 부랴부랴 「닉슨」의 뒤를 쫓아 같은 해 북경을 찾아갔고 그해안에 외교관계룰 수립해버렸다.
일본의 성급한 외교양태가 북괴와의 경우에도 적용된다면 교차승인방식에 의한 점진적 해결의 길을 모색하는 우리정부나 미국의 정책에 큰 타격을 줄 것이 틀림없다.
일목의 또한가지 속셈은 적어도 동북아문제의 해결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주도적인 위치에 서야겠다는 것이다.
미국·중공·소련과 더불어 동북아의 4강을 형성할 수 있는 발언권을 행사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자는 의도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4주 구조는 동맹국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최근 한일간의 몇 가지 현안 때문에 11차 한 일 각료회담을 연기하자면서 북괴의 미소외교에 간단히 농락된다면 국제사회에서의 신의가 문제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한 일 관계가 순망치한의 관계에 있다는 점을 인식해서 성급한 단견으로 한반도의 현상을 변경시킬지도 모르는 북괴와의 정치교류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또 우리정부도 일본의 움직임이 일본의 독자적인 움직임만은 아닌, 미·일등 우방의 대한반도 정책흐름이 변해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경계하면서 적절한 대응책을 강구해야할 것 같다.

<김영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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