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발해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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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머리카락의 장단에 얽힌 논쟁은 3천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기원전 12세기 「이스라엘」의 장사「삼손」은 잠을 자는 사이에 머리를 깎이었다. 그때부터 「삼손」은 힘을 잃고 말았다. 두발은 신체구조상 살갗의 연장에 불과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신분상의 상징으로 생각한다. 오늘의 장발은 1960년대 세계를 흔들었던「비틀즈」의 출현과 함께 시작되었다. 젊은 세대들은 절부하고 작렬하는 젊음의 「심벌」로 저마다 장발을 했었다. 그것은 곧 자유분방과 정열의 표상으로 생각한 것이다.
장발은 한때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시비의 대상이 된 일도 있었다. 독일 군과 같이 절도 있는 집단에서조차 군인들이 장발을 요구하고 나섰다. 지금의 서독수상 「슈미트」는 국방상시절 군인들에게 장발을 허가해서 환호를 받았다.
그러나 이 경우 무한장발은 아니었다. 「헬미트」사이로 머리카락이 치렁치렁 흘러내린 군인상은 사실 자연스럽지 못하다. 더구나 위생상에도 문제가 있을 것이다.
언젠가 서울의 명동에서 장발단속을 할 때 10대 소년들이 장발의 가발을 쓰고 다니는 것을 본 일이 있었다. 그 정도로 장발은 청소년들의 「소망」 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구미사회에서도 장발유행은 한물 지나간 것 같다.
장발대신 턱수염이 유행이다. 턱수염은 장발이 처음 유행할 때보다는 저항이 덜 한 것 같다.
언젠가 외신사진을 보니 외교관중에도 그런 사람이 많았다.
문제는 「유행」이나 「기호」를 행정명령으로 다스리려는데 있다. 뚜렷한 명분이나 이유 없이 다만「혐오감」만으로 그런 것을 다스리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혐오감」의 문체라면 오히려 자연도태에 맡겨 놓는 편이 더 효과적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정도의 문제이지 자(척)로 잴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벌써 19세기 중엽에도 영국에서 장발논쟁이 일어났었다. 머리카락이 긴 은행원이 쫓겨나는가 하면, 장발감사가 있는 학교에 자녀를 보내지 않겠다는 학부모도 있었다.
그러나 영국정부는 규제를 한일이 없었다. 결국 자생적인 평판에 의해 이때의 장발족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었다.
미국의 사회학자 「벌· 서빈」교수는 장·단발의 주기를 1세기쯤으로 생각하고있었다. 1920년대엔 단발이 사회문제가 된 적도 있었다. 역시 영국에서 그랬다.
보수성이 강한 사회에서 언제나 새로운 두발이 등장하는 것도 흥미 있는 일이다.
우리나라는 장발유행 10년만에 비로소 「행정규제」에서 풀어졌다. 전대통령의「유머러스」한 지시에서 비롯된 일이다. 젊은이들이 기분 좋게 생각해야할 면은 두발 그 자체보다도 자율사고를 존중해준 그 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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