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죄없는 내 아들 인권 짓밟는 군대, 용납할 수 없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지금 군을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참담하다. 크고 작은 군기 문란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고 급기야 육군 28사단에서 집단 고문과 다를 바 없는 선임병들의 만행에 윤 일병이 사망했다. 윤 일병 집단 구타사망 자체로도 국기를 뒤흔들 만한데 이제는 육군의 은폐 의혹까지 불거져 나왔다. 육군은 지난 4월 7일 윤 일병 사망 다음날 상습적 가혹 행위에는 입을 다물었다. 사안의 심각성은 최근 군인권센터를 통해 알려지게 됐다. 내부 보고 라인의 왜곡 실상도 기가 막힌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윤 일병 사건에 대해 지난달 31일에야 처음 인지했다고 밝혔다. 언론에 보도돼 알려지기 시작한 다음날이다. 한 장관이 어제 기자회견에서 추가 수사를 지시한 것은 당연하다.

 양파 껍질 벗겨지듯 새로운 사실들이 하나둘씩 밝혀지면서 곪아터진 군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분노는 극에 달하고 있다. 군이 총체적 위기에 빠졌다고 할 수밖에 없다. 군은 국민의 신뢰를 먹고 사는 조직이다. 군에 대한 반감과 공포로 입대를 공공연하게 거부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어떻게 설득하고 설명할 것인가. 군을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한 수뇌부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28사단장 보직 해임 정도로 끝난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무사 안일주의와 보신주의, 악습을 되풀이하는 관행의 적폐를 도려내야 병영도, 군도 바로 선다.

 군의 체질 개선은 병영 문화 쇄신에서 시작돼야 한다. 전투력의 근간인 병영은 보편적 인권과 특수성이 교차하는 곳이다. 그렇다고 병영이 인권의 예외지대가 돼서는 안 된다. 그 위에 군기가 확립돼야 한다. 인권과 군기가 양립할 때 전투력은 배가된다. 그런데도 우리 군은 과거의 무비판적, 조건반사적 복종을 강요하는 병영 문화를 절대시해오지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사회의 가치가 다원화하면 병영 문화도 유연해져야 한다. 신세대 병사들에게 영합하라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조류에 맞게 교육과 훈련을 시키고 동기도 부여해야 한다. 더불어 장교·부사관의 의식도 바뀌어야 병영은 쇄신될 수 있다.

 군 고위 지휘관의 현장주의 확립도 빼놓을 수 없다. 일선 소대와 중대의 고충을 모르는 군 고위 지휘관으로부터 정확한 진단과 처방은 나오기 어렵다. 탁상 행정으로는 병영이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읽어낼 수가 없다. 문제가 터지면 일단 숨기고 보는 군의 고질적 은폐 체질도 척결해야 한다. 군에선 문제만 불거지면 속 시원히 밝혀지는 것들이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군의 일 처리 투명성은 국민의 신뢰를 담보하는 끈이다. 그런 점에서 병영 혁신은 민간은 물론 국회와 함께 진행돼야 한다. 국민적 공감과 개혁의 지속성을 위해서다. 죄 없는 내 자식의 인권을 짓밟는 반문명적 군대는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