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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대장 전역서 전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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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장관님, 합참의장님, 각 군 총장님, 내의 귀빈 여러분, 그리고 친애하는 장병 여러분-·
나는 오늘 지난30년 간 정들었던 군을 떠남에 있어 과거를 향한 숱한 감회와 미래에 대한 확고한 결의가 교차하는 가운데 고별의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본인의 군 생활은 회고하건대 6·25동란으로 우리의 한국이 수난의 위기에 처해 있던 당시 진해육군사관학교에 청운의 뜻을 품고 입교한 것이 군대생활의 첫 출발이었습니다.
민족상잔의 6·25동란을 치르면서 국내의 상황이 어려웠음에도 호국천성의 양성이 국가적 과제임을 공감한 나머지 창설을 보게된 정규육사는 완벽한 민주적 교육제도 하에서 젊은 사관생도들은 우리나라 어느 계층보다 민주적 생활규범과 윤리를 체험을 통해 체득하였습니다.
전후의 사회혼란이 극에 달하였으나 육사의 전통을 창조하고 구국대열의 역군이 되어야한다는 사명감에 불타면서 우리의 정열을 국가와 민족의 제단에 바치겠다는 입교시의 선서를 되씹으며 정직과 계보, 파사현정의 정의감을 절대적 가치관으로 삼고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주저 없이 선택하겠다는 결의에 찼던 시절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이러한 가치관과 소신은 지금도 본인의 행동과 충고를 좌우하는 특징적 요소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4년 간의 교육을 마치고 패기에 찬 육군소위로 임관된 당시와 그 이후의 사회는 자유당말기의 비리와 실정, 그리고 4·19이후, 사회전반에 만연된 혼란과 무기력의 탁류 앞에서 숱한 번 민의 밤을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본인의 초급장교시절은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비리와 무능과 무실임이 만연하여 본인이 생도시절에 가졌던 국가와 민족을 향한 뜨거운 충성의 길과는 완전히 모순된 상황이었고 사회정의가 발붙일 소지조차 없었던 때였으므로 이 땅에는 반드시 정의로운 사회가 구현되어야한다는 절박한 사명감을 확고히 한 시기이기도 하였옵니다.
또한 본인이 영관 장교로서 수도권방어의 일익을 담당하던 시기에 일어났던 1·21청와대 습격사건을 직접체험하고 주월 백마부대 연대장으로 재직시, 패망직전의 월남사회의 혼란상을 목격한 결과 국가의 생존은 어디까지나 국가안보에 우선권을 두어야하며, 내부의 안정과 질서가 무너진 상황 하에서는 자유도 정치발전도 사상누각이 되고 만다는 것을 뼈아프게 절감한바 있습니다.
지난10·26사태를 당하자 국가의 생존을 위태롭게 한 갖가지 상황이 급격히 상정되었고 특히 구 정치인들의 무분별한 선동행위가 국민상호간의 불신풍조를 가속화 시켰으며, 『전부가 아니면 전무』 라는 흑백논리가 민주화의 탈을 쓴 일부 선동분자들에 의해서 말없고 선량한 대다수 국민들이 오도되고 사회의 근본을 파국으로 몰아넣었기에 급기야는 국가존망마저 위태롭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도 현명한 대다수 국민들은 자제와 자중으로 위기를 극복해야한다는 현질 인식과 슬기로 일관하여 우리민족의 강력한 생존의지를 유감 없이 과시하였던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앞에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가 산적되어 있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즉, 고도 경제성장의 부산물로 야기된 계층 간의 위화감을 위시하여,6·25를 경험하지 못한 전후 세대들에게 안보가치도 제대로 심어주지 못했을 뿐더러, 국민윤리와 질서존중의 전인교육보다 입시위주로 흐른 병든 교육풍토와 타락과 선동만이 판치는 정치풍토, 그리고 공직자의 부정부패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많은 병폐들을 안고있는 것입니다.
나는 군인생활을 통하여 언제나 그랬듯이 10·26사태, 12· 12사태, 학원사태와 각종 노사분규, 광주사태, 그리고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설치 등 연속된 일련의 사태와 과업에 직면할 때마다 오로지 정직과 성실로써 맡은바 책무를 다하여 왔을 뿐이었습니다.
다가올 80년대를 전망할 때 예측을 불허하는 범세계적 격동과 격변이 예상됩니다.
이러한 격변의 연대에 대처하여 우리는 역사적 소명의식을 가지고 모든 분야에서 오랜 비리와 부정적 병폐를 과감히 척결해야 되겠습니다.
따라서 본인은 건설적이고 긍정적인 변화와 발전을 추구해야할 일대 전환기에 이 나라가 처해있다는 엄숙한 사실을 인식하고 새 역사, 새 질서 창조에 신명을 바치겠다는 구국의 신념과 불퇴전의 결의로써30년 간의 현역군 생활을 마무리짓고자 합니다.
새 시대를 창조하려는 우리의 결의에 찬 이상은 온 국민이 바라마지 앉는 민주복지국가의 건설입니다. 이와 같은 우리의 이상을 달성하려면 첫째, 우리 역사환경과 문화적 배경에 알 맞는 민주주의를 토착화하여야 하며, 둘째 국민개개인이 물심양면으로 충족할 수 있는 복지사회를 건설하여야 하고, 셋째 계속적이고 광범한 사회개혁을 통해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여야할 것입니다.
이러한 과업은 국가와 민족이 존속하는 한, 결코 중단할 수 없는 절대적이며, 항구적인 목표인 것입니다.
새 역사 창조의 주체는 참신한 개혁의 의지와 신념이 충만해야하고 끝까지 이를 견지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식민지사관, 사대은혜 의식, 무사안일주의로 특징지어지는 구시대물결의 필연적 퇴조야말로 역사발전의 순리일 것이며, 희망찬 새 시대, 도도한 새 역사의 물결이 찬란하게 전개되는 것 역시 신의 은총이며 섭리라고 확신합니다.
또 하나의 과제는 평화적인 정권교체의 전통을 기필코 수립하는 것입니다.
장기집권으로 인한 통폐와 도덕적 결함으로써는 새 역사, 새 질서가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수준의 늪에서 썩어버리고 만다는 역사적 진리를, 조그만 조직, 소집단의 지도자로부터 국가영도자에 이르기까지 공동의 규범으로 삼아야한다고 믿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어떠한 도전도 두려워하지 않고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도덕적으로 합리적으로 수행한다면, 해외동포 여러분들도 분명히 새 역사, 새 질서 창조에 기꺼이 동참할 것임을 확신하며 우리들의 구국적 과업에 기탄 없는 성원을 보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민주복지국가건설의 마지막 과제는 통일에 대한 우리의 확고한 의지입니다.
우리 세대의 통일정책은 선의의 경쟁을 통한 평화적 통일이어야 합니다. 평화통일은 어디까지나 쉬운 것부터 어려운 문제로, 작은 것부터 큰 것으로 꾸준히 추구해 나가야할 것입니다.
또한 이와 같은 노력은 전 국민의 자유의사를 집약하여 범국민적 합의 하에 인내와 끈기로써 주도적 입장을 견지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만일 이와 같은 우리의 평화통일 노력과 진의를 북괴가 외면하고 무력적화통일의 야욕을 버리지 않는다면 그들은 재기불능의 응징을 자초하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당부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군은 철통같이 단결하고 전투력을 극대화하여 여하한 적의 도발도 분쇄할 수 있는 만반의 전투태세를 갖추는 것입니다.
또한 한미 연합방위태세를 강화하기 위해서 불철주야 노력하는 주한연합군사령관 이하 전 장병들의 노고에 대하여 깊은 감사를 드리며 앞으로 혈맹의 우의를 더욱 굳게 다져줄 것을 기대하는 바입니다.
친애하는 장병 여러분-· 이제 여러분 곁을 떠나려하니 섭섭하고 아쉬운 감회를 말로써 형용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과 더불어 군 생활을 통하여 체득한 우국충정과 희생정신으로 국운개척의 험한 길을 결연히 헤쳐 나아가겠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무궁한 발전과 하느님의 가호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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