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사이공 역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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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내가 대사관부 무판으로 「사이공」에 부임한 것은 북괴선임요원이 말하는 64년이 아니었다. 또 월남정부로부터 밤은 훈장은 4개였으며, 그중 훈격이 가장 높은 것은 보국훈장 5등이 아니라 금관훈장 1등이었는데, 북괴선임요원은 이것도 모르고 있었다.
내가 중대장으로서 제6사단 제7연대 제1중대를 지휘하여, 50년 10월 26일 압록강에 제1착 한 것도 모르고 있었고 나의 장군진급 연도도 모르고 있었다.
이 밖에도 나의 주요한 경력들을 그는 거의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의 북한 고향을 정확히 알고있어 이것을 토대로 하여 나를 전향시켜 보려고 공갈·협박·회유의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했다.
북괴 선임요원은 그가 우리누님을 만나본 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이야기를 하나 했다. 즉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시고 바로 손위의 누님이 어머니를 대신해서 나를 돌봐주셨다. 하루는 먼길을 가야겠는데 집이 가난해서 다 떨어진 고무신을 신고 있었다. 그 차림으로는 도저히 집을 떠날 수가 없어나는 울고 있었다.
누님은 이웃 친척집에 가서 중고품 고무신을 한 켤레 얻어 가지고 왔다.
나는 그 고무신을 신고 집을 나섰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한참만에 손을 떼었더니 그자는 『당신 같은 서투른 배우는 처음 봤소. 뭐 귀를 막구…』 이번에는 흰 「노타이」 입은 자가 입을 열어 우리 민족의 고통은 국토양단이 근본원인이기 때문에 조국통일은 5천만의 염원이라는 등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나는 시선을 내려 방에 깔린 정사각형으로 된 꽃무늬「타일」 조각들을 보며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증명하는 기하풀이를 눈으로 했다. 심문이 끝날 무렵 북괴선임요원은 『당신은 북반부에서 도망친 도주범이요. 사회주의 형제 국간에는 범인인 도협정이 체결되어 있소. 우리가 망신을 북반부에 못 데리고 갈 줄 알아. 얼마든지 강제로 데리고 갈 수 있소.
그리고 대한민국의 뷔패상 등을 또 늘어놓았다. 나는 참다못해 『여보시오. 그런 소릴 백번 천번 만번, 아니 백만번 해 보시오. 나에게는 다 소용없는 말들이요. 내가 눈 하나 까딱할 줄 아시오? 어림도 없소』
해는 서쪽지평선에 기울고 제4차 심문도 아무런 성과 없이 막을 내렸다.
찻 속에서 「광대뼈」 보좌관에게 『나를 북한으로 강제 납치해 가려는데 나는 죽어도 북한에는 안 가겠소. 월남 측은 이것을 알아야하오』 했더니 그는『당신의 고향이 북조선이고 친척들도 북조선에 있으니까 가야하지 않소?』 했다. 『그게 무슨 소리요. 나는 처자가 남한에 있는 국제외교관이요』하고 반박했다.
형무소에 돌아오니 식은 밥과 식은 국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교민회장이 차입한 식품일부를 안영사가 중계해서 보낸 것을 밥과 함께 먹었다. 서영사에게 편지를 쓴 후 넓은 방을 홀로 걸었다. 희미한 형광등에는 하루살이가 달려들고 있었다.
3년 5개윌, 그간 극한적인 위기를 여러 번 맞았다. 그러나 그 위기는 최악의 반보전에 모두 호전됐다. 이번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누님 모습이 떠올랐다.
북괴 공작요원들이 시키는 대로 국제적십자사 총재에게 나의 신병인도 요청편지에 서명을 한 다음 옥중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허덕이고 있는 동생을 생각 할 때 누님의 가슴은 어떠했을까. 어렸을 때 동생을 그렇게도 측은하게 여기시던 착하신 누님. 아! 38선과 17도선의? 쌍위선은 이 지구상에서 나와 누님에게 가장 가슴 아픈 비통을 안겨 주는구나. 보고 싶은 누님, 그러나 누님이 차입품을 들고 내 앞에 나타나면 나는 눈을 감고 돌아앉으리라 결심했다.
북괴 공작요원들의 흉한 음모에 말려들거나 굴복하느니 보다는 당연히 죽음을 택해야한다.
가슴의 아픔을 가시게 하기 위해나는 정좌를 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하는 정좌였다. 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무릎 위에 놓고 눈을 감았다. 누님도 처자도, 삶도 죽음도 없는 무아의 경지 속에 시간은 흘러갔다.
취침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에 정좌를 풀고 땀을 닦았다. 고요한 정적 속에 이상한 소리가 나서 변소 옆 두개의 작은 물독 있는 곳으로 갔더니 식기를 달가닥거리던 생쥐 한 마리가 후닥닥 도망치다가 잘못해서 물이 들어있는 독 안에 빠졌다. 생쥐는 물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내가 가장 미워하는 것은 뱀과 쥐와 파리이건만 나는 긴 한숨을 내쉬고 비를 가지고 가서 사지에 빠져 있는 생쥐를 건져 살려주었다.
또 한밤이 가고 해가 뜨니 10월1일 일요일 아침이다. 오늘은 휴일이라 심문이 없을 것으로 믿고 방안에 앉아있는데 간수가 와서 또 가자고 했다. 찻속에서 「광대뼈」 보좌관에게『소용도 없는 것인데, 왜 자꾸 이렇게 데리고 가는 거요. 언제까지 심문을 끌 것이오』하고 물었더니 『당신이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니까 이러는 것 아니요. 북괴선동자들이 요청하는 한 몇 번이고 당신을 데리고 갈 것이오』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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