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이끄는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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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그림 값이 비싼 화가는 이중섭이다.
너절한 답배 포장지 뒷면에 그린 낙서라도 있다면 근 백만 원이 나간다.
그러나 그만큼 과대평가 되고 있는 작가도 드물다는 이론도 있다.
그는 끝내 미완성의 화가로 끝났다. 여기에 그의 다시없는 매력이 있었다.
그는 끼니를 거를 정도로 가난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에 온 삶을 불태웠다.
만약에 그가 가난하지만 않았다면 . 사람들은 못내 아쉬워한다. 그러나 생전의 이중섭이가 아쉬워했던 것은 가난이 아니었다.
자기 예술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예술가는 언제나 「패트런 을 필요로 한다.「괴테」가『파우스트』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패트런」으로부터 받은 연금 덕분이었다고 자인했다.
그러나 「모차르트」 가 그처럼 궁하지 않았다면 그처럼 많은 작품을 내놓지는 않았을 것이다.「발자크가 다작이었던 것도 수인 율을 웃도는 지출을 메우기 위해서였다. 「도스토예프스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미술가에게 있어 가장 무서운 것은 가난이 아니다. 그릇된 평가다.
「렘브란트」는 만년에는 걸작을 많이 그리지 못했다.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좌절감에서 창조에의 의욕을 상실한 E문이었다.
예술가는 어느 나라나 가난하다. 그래서 「덴마크 「스웨덴」은 물론이요, 서독에서도 5년 전부터 예술가들에게까지 사회보장의 혜택을 주기로 했다.
그러나 「스웨덴」이나 서독의 미술계는 아직도 불모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버나드쇼」가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되자 「스웨덴」학사 원에 다음과 같은 거절의 편지를 보냈다.『그건 육지에 무사히 헤엄쳐 나간 사람에게 던져 준 구조「벨트에 】불과 합니다 .』
돈은 예술가를 타락시키기 쉽다. 그러나 올바른 평가는 예술가에게 한없는 창조력을 키워준다.
만약에 이중섭의 젊은 시절에 미전이 있었다 해도 그가 과연 대상을 받을 수 있었을까? 매우 의심스럽다.
제3회 중앙미전이 막 개막되었다. 혹은 제2의 이중섭과 주전이 낙선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앙미전이 해를 거듭할수록 보다 많은 젊은 화가들에게 보다 많은 활력소를 던져주고 있다고 믿고 싶다. 그러기 위해 마련된 미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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