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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생력 없는 진보정치의 민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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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정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정하
정치국제부문 차장

7·30 재·보선에서 새정치민주연합과 정의당은 서울 동작을과 수원정에서 각각 자기 당 후보를 철수시키는 거래를 성사시켰다. 양당은 후보단일화가 당 차원이 아니라 후보 개인의 결단이라고 강변하지만 유권자들이 볼 땐 그게 그거다. 동작을에선 새정치연합 기동민 후보와 정의당 노회찬 후보의 지지율이 비슷했지만, 수원정에선 새정치연합 박광온 후보가 정의당 천호선 후보보다 훨씬 우세했다. 그러니 애초부터 협상이 타결되려면 동작을에선 기 후보가 빠지고 수원정에선 천 후보가 사퇴하는 게 양측이 ‘윈-윈(Win-Win)’ 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었다. 노 후보가 후보단일화가 안 되면 사퇴하겠다고 배수의 진을 친 건 이런 수읽기를 바탕으로 한 ‘블러핑’이었는지도 모른다.

 오늘 치러지는 동작을과 수원정의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올진 알 수 없다. 그러나 후보단일화가 없었을 경우와 비교하면 야권 후보의 승산이 높아진 건 틀림없다. 정치공학적 관점에서 후보단일화는 확실히 성공작이다.

 하지만 뒷맛은 씁쓸하다. 도대체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야권의 후보단일화 소동은 언제까지 계속되는 걸까. 지금과 같은 상태라면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 때도 또다시 야권 후보 단일화를 놓고 줄다리기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서로 줄기차게 치킨 게임을 벌이다가 선거 막판에 ‘구국의 결단’이란 명분하에 한쪽 손을 들어주는 뻔한 시나리오 말이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의 포장마차 러브샷엔 유권자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울림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 후보 단일화는 어떤가. 선거 때마다 통과의례가 되다 보니 이젠 식상하다 못해 피로감마저 느낄 지경이다.

 새정치연합이야 기성 정당이니 그렇다 치자. 진보정치를 자처하는 정의당의 정치 공학은 대체 뭔가. 이번에 얼핏 보면 최대 관심지역인 동작을에서 후보를 따 낸 정의당이 실리를 짭짤히 챙긴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길게 보면 이번 단일화로 정의당은 홀로 서지 못하는 ‘진보정치’의 취약성을 만천하에 자백한 셈이 됐다. 정의당은 2012년 대선 후보는 물론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도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에서 광역단체장 후보를 내지 못했다. 야권 후보 단일화에 밀려서다. 주요 선거에서 후보도 못 내는 정당의 존재 의의가 뭔지 모르겠다. 독자 노선보다 후보 단일화가 더 중요한 가치라면 왜 새정치연합과 합당은 하지 않는 걸까. 지금처럼 선거 때마다 단일화를 추진하는 방식이 주가를 올리는 데 더 유리하다는 계산 때문일까.

 2010년 국민참여당이 창당되자 당시 민주당 박주선 의원은 “민주당에 기생하고 특정인의 정치적 출세를 위해 만들어진 선거용 가설정당”이라며 독설을 퍼부은 적이 있다. 다소 과한 표현이다. 하지만 그 이후 국민참여당의 궤적을 보면 박 의원의 말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닌 것 같다. 정의당은 4년 전 박 의원의 비판이 지금 자신들에게도 해당되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자생력 측면에서 말이다.

김정하 정치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