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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이인정<등반대장>|"정상의순간"위한기나긴고행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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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백50명이 4·5t 짐 운반>
『정상의 순간은 짧다. 그러나 정상에 이르는 길은 길고긴 고난의 연속이다.』
한 산악선배의 말처럼「마나슬루」를 향한 우리의 앞길에는 숱한 어려움이 따랐다.
71년이후 한국대가 3번씩이나 좌절을 맛본 비정(비정)의 산이기에 대원들은 물론「마나슬루」원정대를 떠나보내는여러사람들의 마음도등정의 꿈에 부푼그것만은 아니었다.
3년동안 훈련을 해오면서『이제「마나슬루」의 짐은 우리어깨에 올려졌다』고 대원 각자가 비장한 각오를 했지만 대장인나로서는『과연 우리가 등정에 성공할수있을까』하는 걱정에앞서『대원 모두가 무사히 돌아올수 있을까』하는 우려가 원정기간 내내 가슴속을짓누르고 있있다.
「카트만두」를 떠나 해발 3천9백m지점의「베이스·캠프」까지는 대원은 물론 원정대의 모든장비가일일이도보로밖에움직일수가없었다.「헬」기가 운행되고는 있으나 경비가 비싸고 용도가극히 제한되어 원정대에는 그림의 떡일뿐이었다.
4·5t이나 되는 장비를1백50여명의「포터」가 나누어 지고 한줄로 나란히 서서 며칠씩 행군을 계속하는 장면은「히말라야」원정에서만 볼수있는 장관이다.「캐러밴」이라고 부르는이대행군은「마나슬루」의 경우 보통 2주일이 걸리며 이기간 대원들은 대자연에의 도전을 앞두고이국적인 풍취에 젖어들기도하고 앞으로 벌어질극한 상황에서 운명을 같이하게될「셰르파」들과우정을 나누기도했다.
대부분의 원정대와 마찬가지로 우리도「사다」2명,「셰르파」5명, 고소(고소)「포러」5명,요리사 1명,우편배달부 2명,요리보조원4명,정부연락관 1명,그리고 일반「포터」l백23명과「나이케」(「포터」책임자)를 고용, 3월8일「캐러밴」출발지인「트리슬리」를 떠나「베이스·캠프」를 향했다.

<「포터」들은 하루 두끼먹어>
높은산의 눈과 얼음이 녹아 흘러내리는「부리간다키」강을 거슬러 올라가는「캐러밴」깅은 요란한 물소리를 듣고 걷다가 그물로 밥을 지어먹고 물소리를 자장가삼아 잠을 청하다가새벽녂이면 다시 그 물소리에 놀라 깨어나는 일과가 되풀이 되었다.
대원과「셰르파」들은 대개 새벽5시30분쯤 일어나 아침식사를 한뒤 6시30분쯤 출발했으나하루 2끼밖에 먹지않는「포터」들은 우리가 식사를 하는동안 짐을 꾸려 따라오다가 상오9시쯤되면 멈추라는 지시도 필요없이 주저앉아 아침 겸 점심준비를한다.그들이 먹는 음식의양과 가짓수는 대단했다. 보리죽·만두·미싯가루·밀가루호떡·수제비,밥은 물론옥수수로 엿까지 고아먹고 홍차를 대여섯잔씩 마신다.
식사때 사용하는 도구라고는 맨손뿐이면서도 누른밥이나 숭늉은 개가 먹는것이라고해서 모두 버린다.연료는 나무를사용하는데 불피우는기술은 아마 세계 제1일것이다.12∼13세쯤의어린「포터」들까지도젖은 나무에 금세 불을 붙인다.
「포터」들의 식사가 끝난뒤 1시간쯤 걸으면 대원들의 점심시간이 된다.
그래서「캐러밴」도중에는 걷는 시간보다 먹고 쉬는 시간이 더 많았다. 거의가「티베트」사람들인「포터」는그러나「히말라야」원정에서는빼놓을수없는 존재다. 맨발로 산길을, 그것도 30∼40kg씩의 무거운짐을지고 10여일동안 하루도 쉬지않고 걸을수있는 족속은 아마 이세상에 이들밖에 없을것이다.그들의 강인한 체력과 참을성은 고산족 특유의 체질로 생각되었으나 자기몸무게보다 많은 짐을 진 어린「포더」나 나이가지긋한「포터」의 모습은 아무리 돈을 주고 고용했다하더라도 측은한 느낌을 감출수 없었다.
전혀 빨아입지 않은듯한 남루한 옷차림,퀴퀴한 몸냄새,이와 벼룩이 들끓는「포터」들의 모습은거지이상이었고「카트만두」에사는「셰르파」에 비하면 일종의 짐승으로 보일정도였다.
「트리슬리」에서는「마나슬루」를 비롯한「히말라야」의 거대한 산군이 보였으나 계곡으로 접어들면서부터는 주변의 6천m급 봉우리만 간간이얼굴을 내밀뿐「마나슬루」는 그 위용을좀처럼나타내지않다가「캐러밴」12일째인3월18일하오「로」마을에 올라서자 마치 기다렸다는듯이 광활한 설원과 흰봉우리를 머리에 인 장엄한 모습이 압도하듯 펼쳐졌다.

<몸에 밀가루 뿌리면 행운>
사진으로만 보고 말로만 듣던「마나슬루」,우리의 산 친구들을 16명이나 앗아간 마의 봉우리,까마득히 올려다보이는 정상위로 하얀 눈연기가피어오르는 광경을 대원들은 한동안 얼어붙은듯꼼짝도 않고 바라보았다.
하루뒤 마지막 마을인「사마」(해발3천7백m)를 거쳐 3월19일하오 3시30분「베이스·캠프」장소에도착했다.「베이스·캠프」는75년도「스페인」대가 쓰던 자리로 정했다. 한국대가 쓰던 곳은 운이 좋지않다는「사다」의 말에따라 바꾼것이다.
「프터」들에게 임금을 지불하여 모두 내려보내고 나니 원정대가갑자기 허전해진 것같다.
대원들과「셰르파」·고소「포터」에게 등산화·「피켈」·우모복·「아이젠」·「고글」(눈안경)등 장비를나누어준 뒤 곧「베이스·캠프」설치에 들어갔다. 대원용과「사다」·정부연락관·「셰르파」·식당용등「텐트」6개와 장비·식량·창고·주방등을 마련하고 한가운데「폴」을 세워 태극기와「네팔」기·산악회기를 달아놓으니「베이스」의면모가 제법 갖추어졌다.
21일아침 무사고산행과 성공을기원하는 산제(산제)를지냈다.준비해간 몇가지 음식을 차려놓고 술잔을 돌린뒤 우리는 마음속으로 빌었다.『마나슬루」의신이여! 부디 우리 산사나이들의 뜻을 거부하지 마시고 당신이 간직한 그신비의 정상을 허락하시어 먼저 가신 악우(악우)들이 편히 잠들게 하소서!』
제사가 끝난뒤 대원과「셰르파」들은 이지방 풍습대로 서로의 몸에 밀가루를 뿌려 행운을빌어주었다. 흰눈을뒤집어쓴「마나슬루」와 일심동체가 되려는 인간들의가련한 기구라고나 할까, 하뭏든정상을 향한 원정대의 고난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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