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를 현실과 관련시켜 예술미 표현 박두진의 『꽃』|해바라기 성향의 이기주의 사회를 풍자 문병난의 『바보』|작은 풀꽃에서 생명의 신비·사랑을 조명 이인해의『사랑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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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시인들의 현실 탐구와 미의 탐구는 자기 영역의 독자성과 개성화에서 좋은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순간보다는 지속적인 예술미의 모색에서 현실의 미는 더욱 심화된다.
현실의 의미나 예술미는 지나치게 난해한 방법이나 직접적 표현 방법을 구할 때 전달의 의미를 잃게 된다. 시의 독자들은 상품의 대상이나 시인들의 기호적 대상일 수는 없다. 시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시의 현실에서 감동을 받는 것이 독자들이 가지는 시의 원초적 의미다.
이 달의 시에는 이러한 시의 독자성과 개성화에 많은 수확을 얻고 있다.
소재를 소재 자체로서 대상하지 않고, 현실 의미와 조화시킴으로써 시의 영역을 더욱 확대하고 있다.
박두진의 『꽃』 (문학 사상)은 대학 교정의 화사한 햇살 아래 핀 진달래꽃을 현실 의미와 관련시킴으로써 시의 현실 인식과 예술미를 나타내고 있다. 꽃은 4월의 계절 의미와 고운 색깔로서의 속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시인의 개성은 한 송이의 꽃을 볼 때 너무도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저 어디서 함성 소리/어여/어여/만세 소리,/오늘 여기/불길로 다시 살아 꽃으로 타고 있다.』(『꽃』의 후반부)
꽃의 의미는 각자에 따라 다르다. 철저한 탐구가 계속될 때 시의 영역이 확대되며 오늘을 사는 생활의 아픔이 예술미로 환치된다.
문병난의 『바보』 (월간 중앙)는 자기를 잃어버리고 사는 우리들, 그리고 해바라기처럼 향일성으로 살아가는 이기주의의 사회를 풍자한 시로 보인다.
『그리고 나는 바닷가 왕국의 왕자/아나벨리는 늙어 할머니가 되고/나는 이제 별을 바라보지 않는다/바보는 자기가 바보임을 모른다/바보는 자기가 바보임을 알 때 불행해진다/아, 나는 내가 바보임을 아는 바보인가.』(『바보』 후반부)
자신이 바보임을 알 때 느끼는 불행, 모두가 잘난 사람들이 사는 오늘날의 사회 생리를 날카롭게 진단한 이 시는 문병난 특유의 표현 기법을 통해서 현실 의미를 더욱 확산하고 있다.
이인해의 『사랑 법』(심상)은 작은 풀꽃 하나에서 생명의 신비와 사랑을 조명한 시로 보인다. 이인해는 날카로운 감성과 예지를 통해서 사물의 인식을 철저화한 시인이다. 감성의 훈련 없이 좋은 시가 나올 수 없으며, 예지가 그것을 다스리지 못한다면 시는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는 시의 원초적 의미를 터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작은 풀꽃 하나 흔들릴 때/나는 보았지. 잎 하나,/옆의 풀꽃에게 날아가/작은 잎 하나에 내려앉아/잎 하나를 만나는 것을. /나는 보았지. 나무들,/옆의 나뭇가지 흔들고/그 아래 무수히 태어나는 아이들./나는 불빛이 그리웠지.』 ( 『사랑 법』 첫연과 끝연)
생명과 사랑은 인간의 원초적 요소다. 풀잎 하나, 나뭇가지의 흔들림에서 태어나는 생명의 신비를 우리들은 지나쳐 보는 수가 많다. 시인의 눈은 이러한 생명과 사랑과 신비를 찾아내고 그것을 예지로 통제함으로써 시의 질서를 가지게 한다.
독자들은 이 질서에서 기쁨을 느끼고, 작자의 감성을 통하여 감동을 일으킨다. 미의 신비가 바로 생명과 사랑의 신비라는 것을 이 시를 통해서 우리들은 감득할 수 있다.
엄창섭의 『기도』(시문학)는 다툼으로 인하여 페허화한 우리의 현실을 기독교적 사랑과 기대감으로 시화하고 있다.
시에다 지나치게 종교적 의미를 부여한다면 시의 예술성을 상실할 우려가 있다.
그러나 이 시는 종교와 현실, 그리고 예술화를 조화시킴으로써 시의 영역을 확산하고 있다.
해저 같은 어둠이 있는 도시는 우리의 현실이기보다는 신의 현실일지 모른다.<문학평론가·관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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