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의 라이벌, 뮤지컬 맞대결 … 운명에 절규하는 천재 모차르트 VS 질투의 화신 보통사람 살리에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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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천재의 고뇌와 범인(凡人)의 고뇌가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맞붙었다.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모차르트’와 M씨어터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살리에르’. 18세기 동시대를 살았던 두 음악가의 삶을 짙은 연민의 눈으로 바라본 작품들이다. 누구의 인생도 호락호락 흘러가지 않았다. 모차르트는 자유로운 삶을 꿈꾸며 평생 자신의 천재성에서 벗어나고자 안간힘을 썼다. 반면 살리에르는 그런 천재 모차르트를 만난 뒤 열등감에 시달리는 질투의 화신이 되고 만다. 두 작품이 그려낸 각 사람의 내적 갈등이 똑같이 무겁고 심각하다.

운명에 절규하는 천재 모차르트 뮤지컬 ‘모차르트’. 각각 천재성과 질투심 때문에 파국을 맞게 되는 음악가 두 명이 주인공이다.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절대 다신 천재로 살지 않아”=천재의 절규는 소박했다. 모차르트는 “아버지가 원한 삶이 아닌 그냥 내가 되겠다”며 울부짖는다. “절대 다신 천재로 살지 않겠다”는 천재의 몸부림이 일반인의 가슴까지 아프게 전해졌다.

 ‘모차르트’는 2010년 국내 초연한 이래, 올해로 네 번째 시즌을 맞은 오스트리아 뮤지컬이다. 영국인 연출가 아드리안 오스몬드가 새로 연출을 맡아 모차르트의 방황과 갈등·절망을 강렬하게 표현했다. 모차르트 역은 초연 때부터 자리를 지킨 박은태·임태경과 지난해 ‘엘리자벳’으로 뮤지컬 데뷔를 한 가수 박효신이 번갈아 맡았다. 다음달 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한 뒤, 광주·창원·부산·대구 무대를 찾아간다.

 모차르트를 가장 힘들게 한 존재는 강압적인 아버지도, 그의 고용주인 콜로레도 대주교도 아니었다. 영화 ‘아마데우스’를 통해 그를 시기하고 괴롭힌 존재로 알려진 살리에르는 아예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 모차르트는 자신의 타고난 천재성에 묶여 괴로워했다. 그의 천재성은 ‘아마데’란 이름의 어린 소년으로 형상화돼 그를 끝까지 따라다녔다.

모차르트는 “아름다운 교향곡도 날 감싸는 여인들의 살결 앞에 아무 의미 없다”고 말할 만큼 자유로운 삶을 갈망했다. 하지만 그의 인간적인 고뇌가 깊어질수록 ‘아마데’가 악보를 써내려가는 속도는 빨라졌다. 결국 ‘아마데’는 모차르트의 목을 조르고, 심장을 찌른다.

 원하는 삶과 주어진 삶 사이의 괴리. 그 아픈 숙명을 따라가며 ‘모차르트’ 분위기는 시종일관 무겁다. 로코코 시대의 화려한 의상과 배우들의 폭발적인 가창력이 먹먹한 가슴을 풀어줄 한 틈 위안이 된다.

질투의 화신 보통사람 살리에르뮤지컬 ‘살리에르’. 각각 천재성과 질투심 때문에 파국을 맞게 되는 음악가 두 명이 주인공이다. [사진 HJ컬쳐]

 ◆“처음부터 너를 몰랐다면…”=창작 초연 뮤지컬 ‘살리에르’의 키워드는 질투와 열등감이다. 러시아 작가 푸시킨의 희곡 『모차르트와 살리에르』(1830)를 원작 삼아, 모차르트의 재능 앞에서 절망하며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걸어간 살리에르의 내면을 파헤쳤다.

 살리에르는 성실한 보통 사람의 모습을 대변한다. 그는 노력의 힘을 믿었다. “노력한다면 이 세상에 안 되는 건 없다”는 신념을 가졌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이란 없다”는 꿈이 있었다. 하지만 모차르트를 만나는 순간, 그의 확신은 사라졌다. 그 뒤 살리에르의 내면은 질투심이 꽉 채운다. 뮤지컬 ‘풍월주’ ‘커피프린스 1호점’ 등을 썼던 작가 정민아는 질투심을 ‘젤라스’라는 신사의 모습으로 그려냈다. 젤라스는 살리에르에게 접근해 끊임없이 그를 자극했다. “모차르트는 천재”라면서 “당신은 잊혀질 것”이라고 겁을 줬다. 젤라스의 말에 귀를 기울일수록 살리에르는 피폐해졌다.

 끝내 파국을 맞은 살리에르는 “처음부터 너를 몰랐다면”이라며 괴로워했다. 그 ‘너’라는 게 모차르트가 아니라 질투심이란 걸, 거울 무대에 비친 살리에르의 뒷모습이 읽어준다. 뮤지컬 ‘모차르트’에서 그토록 고뇌하는 인물이었던 모차르트가 ‘살리에르’에선 “이 순간을 즐겨봐”를 외치는 철없는 천재로 묘사됐다. ‘보는 관점’이란 게 그만큼 우스우면서도 또 무섭다. ‘살리에르’ 공연은 8월 31일까지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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