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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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제4세계」-. 풍요한 선진문명의 그늘 속에서 다만 「생존」만을 위해 허덕이는「유럽」의 빈민대중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 「례·미제라블」(비참한 사람들)은 현재 1천만명을 웃도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나 부익부 빈익빈의 경제·사회구조 때문에 그 수는 점점 늘고 있는 실정이다.
어느 곳에나 도시의 밝은 대로 뒤 안에는 그늘진 골목길이 있기 마련이지만 비교적 사회보장제도가 확립되어 있는 서구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1백50만명의 실업자 문제로 고심하고 있는 「프랑스」에서는 「파리」시민 중 1만여가구 이상이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고 있으며 어쨌든 요즘은 서울에서도 구경하기 쉽지 않은 구걸·동냥객을 대낮 거리에서 수 없이 만나게 된다.
지하철역이나 공원「벤치」에 새우등을 하고 쓰러져 있는 남루한 옷차림의 행려환자도 적지 않다.
이들에게 있어서 「가지지 못한 것」이상으로 서러운 것은 못 가졌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감내할 수밖에 없는 보건·교육 혜택에서의 소외와 떳떳한 시민으로서 당연히 향유해야 할 공공생활에의 통로 차단이다.
요즘 「유럽」에서 「제4세계」에 대한 문제가 심각하게 논의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걱정생활수준 보장, 교육·보건 혜택의 실질적인 균분등 보다 적극적이고 전진적인 정책의 실시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못 가진 사람들을「인수거절품」시하는 가진 사람들의 몰이해와 무관심에서의 탈피가 구두선 같은 정책 나열에 앞서야 한다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 있게 들린다.
최근 구공시(EEC) 9개국 시민들을 상대로 한 어떤 여론조사는 조사대상자의 90%가 자신들 주변의 「제4세계」존재를 모르고 있거나 무관심한 것으로 집계했다. 지나친 무관심의 결과 『소리없는 지하실의「멜러디」가 광란의 소음』으로 바뀔까 저어하는 뜻 있는 이들의 근심도 그냥 빈말은 아닌 것 같다.
어느 모로나 형편이 나을 것 같은 나라들과 동일 선상에서 우리를 돌아볼 수야 없겠으나 우리네「제4세계」의 심도가 이들보다 결코 깊지 앉으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겠다. 가질 기회를 박탈당했거나 가질 능력이 없어 못 가진 사람들을 따뜻하게 포용은 못할 망정 행여나 「인수거절」하는 「가진 사람들」이 우리 둘레에 더 많지 않을까 걱정해 본다.

<주원상 파리특파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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