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의 아이콘 vs 쇼잉의 아이콘 … 엇갈리는 유진룡 평가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지난 3월 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46회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왼쪽)과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오른쪽). 가운데는 당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중앙포토]

“박근혜 대통령이 유진룡 전 장관에게 오히려 한 방 먹은 거다.”

 지난 17일 유진룡(58)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면직 뉴스를 본 한 문화계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이 조용히 교체하면 될 것을 괜히…. 무능하고, 끼리끼리 해먹는 관피아에 전 국민이 염증을 내고 있는 상황에서 유 장관을 면직시킴으로써 소신 있는 공직자의 표상(表象)으로 만들어 버렸다.”

 유 전 장관은 노무현 정부 때도 화제의 인물이었다. 문화관광부 차관이었던 2006년 정권 실세의 인사 청탁을 거절했다가 청와대 참모로부터 “배 째드리죠”라는 협박을 받았다고 공개해 유명세를 치렀다. ‘권력 눈치 안 보고 직언하는 이’로 알려지게 됐다. ‘스타 공무원’ 반열에 올랐고, 박 대통령도 집권 직후 그를 문화부 장관으로 발탁했다. 문화부 관료 출신으로 첫 장관인 터라 문화부 내의 열렬한 지지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이례적으로 면직을 당하면서 “올곧은 성품 탓에 대통령과 자주 충돌해 미운털이 박혔다”는 세간의 설이 정설로 굳어지는 모양새가 됐다. 과연 지난 1년5개월간 유 전 장관과 청와대 사이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청와대서 인사 개입해도 순순히 수용”
“문화부 실·국장, 산하기관장 인사를 장관 아닌 청와대가 한다”는 얘기는 지난해 유 전 장관 임명 직후부터 공공연히 나돌았다. 복수의 청와대·문화부 관계자가 “실제로 그랬다”고 중앙SUNDAY에 확인해 줬다. 예컨대 유 전 장관이 국장급 고위직에 1순위로 올린 S·N씨를 청와대가 탈락시키고, 2순위자나 다른 인사를 그 자리에 앉혔다는 거다. 서울의 모 국립예술단체장의 경우에도 유 장관은 P씨를 추천했지만, 청와대는 박근혜 캠프에서 일했던 또 다른 P씨를 내려보냈다고 한다. 문화부 관계자는 “관료 사회의 핵심은 인사권이니 유 장관이 무력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했다. 다른 문화부 인사도 “유 전 장관은 ‘실·국장은 못 건드리고 과장 인사나 한다’는 자괴감이 컸다”고 했다. 반면 청와대 관계자는 “(유 전 장관이 올린 인사는) 유 전 장관과 같은 서울고 동문으로, 전문성이 떨어졌다. 또 다른 (낙마)인사는 음주운전 전력이 있었다. 잘못된 사람들을 연달아 무리하게 올린 것”이라고 반박했다.

 유 전 장관이 취임한 뒤 상당 기간이 흘렀는데도 산하기관장의 후속 인사가 늦어지자 “유 장관이 청와대에 항명한다”는 설이 이어졌다. 심지어 “청와대가 내려보낸 예술의전당 고학찬 사장 인사안을 유 장관이 틀어쥐고 통과시키지 않아 박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했다”는 소문까지 났다.

 그러나 문화부 관계자는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가) 대통령 캠프에 있던 P씨를 (기관장에) 내려보내자 유 전 장관은 ‘경험 많은 연출가’라며 반색하고 맞아들였다. 고학찬 사장에 대해서도 ‘잘 챙겨야 한다’며 문화부 직원을 시켜 브리핑까지 해줬다. 청와대 뜻을 거스르기는커녕 선선히 잘 따른 것이다.” ‘저항의 아이콘’은 다소 과장됐다는 주장이다.

탈권위 행보 … “재임 중 성과 없다” 비난도
유 전 장관은 서울고와 서울대 무역학과를 나왔다. 1978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당시로선 비인기 부처인 문화공보부를 자원했다. 그는 정통 문화행정가라는 자부심이 강했다. 8년 전 차관에서 물러난 직후 대형 로펌에서 고문으로 와 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고위 공무원이 처신을 그렇게 해선 안 된다”며 사양했다고 한다. 솔직담백한 성격에 권위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후배 공무원들의 인기를 받았다. 문화부 관계자는 “사리사욕 없이 정직·투명하게 일처리를 한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장관 재임 기간 성과가 없었다”는 쓴소리도 적지 않다. “일보다는 이미지를 중시하기 때문”이란 지적이 뒤따른다. 또 다른 문화부 관계자는 “(대통령의 결정에) 불합리한 면이 있으면 평상시 건의하는 게 맞지 않나. (유 전 장관이) 조용히 있다가 막판에 ‘외압이 있었다’며 언론 플레이를 했다. 정치적이다”고 말했다.

 이념적으로도 청와대와 갈등을 빚었다는 후문이다. 민주당의 문재인 대선 후보 캠프에서 문화정책을 담당한 인사를 문화부 자문위원으로 위촉하는 등 유 전 장관은 야권 인사들과도 친분이 있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현재 문화계 지형이 다소 좌편향이라 유 전 장관이 균형을 잡아주길 기대했는데 전형적인 리버럴리스트(자유주의자)더라”고 평했다.

 반면 유 전 장관의 지인은 청와대 압력설을 제기했다. “유 장관이 올 초 모임에 와서 ‘진보단체 국고 지원을 없애라는 압력을 받는다’고 했다. 이어 ‘그렇게는 못한다. 입속에 들어간 걸 어떻게 꺼내나. 차라리 나를 자르라’고 했다고 하더라.”

대통령과 마지막 독대도 분위기 냉랭
4·16 세월호 참사 직후 유 전 장관은 국무회의에서 “내각이 총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문화부 관계자는 “그런 발언을 한 건 맞다”면서도 “전후 사정은 알려진 것과는 좀 다르다”고 했다. “문화부 장관은 국정홍보의 역할도 한다. 유 전 장관으로선 본인이 총대를 메고 ‘내각 총사퇴’를 주장하는 게 대통령의 부담을 덜어줄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이 발언이 대통령의 외면을 받자 꽤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이후 사흘간 유 전 장관은 결재를 받지 않았다.”

 임기 막판 유 전 장관과 박 대통령의 관계는 소원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 다른 문화부 관계자는 “유 전 장관과 대통령의 독대는 과거에도 몇 차례 있었지만, 정성근 신임 문화부 장관 지명 이후 마지막 독대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유 전 장관은 그간의 인사문제 등을 허심탄회하게 얘기했지만 대통령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 와중에 ‘정성근 폭탄주’ 사건이 터져나왔다. 정성근 후보자가 청문회 정회 도중 폭탄주를 마셨다는 것인데, 이 자리엔 문화부 직원도 상당수 있었다. 유 전 장관과 친할 수밖에 없는 이들 직원 가운데 누군가가 폭탄주 얘기를 외부에 흘렸다는 의심을 받을 만한 정황이었다. 이로 인해 정 후보자에 대한 비난이 더 커졌고, 이후 유 전 장관 유임설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에 쐐기를 박기 위해 청와대가 ‘면직’이란 강수를 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면직은 유 전 장관의 이미지만 높여줬다는 분석이 관가에서 나온다. “복지부동이 팽배한 공무원 사회에서 할 말을 하는 소신파 관료란 인상을 남겼다”는 것이다. “차기 정부에서도 유력한 각료 후보의 하나로 거론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와는 반대로 “본인이 의도했든 아니든 장?차관을 물러나면서 두 번 연속 정권에 부담을 준 만큼 재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만만치 않다.

 청와대의 판단에 문제를 제기하는 쪽도 있다. 한 여당 인사는 “아무리 문제가 있어도 그를 면직하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걸 청와대 참모들이 대통령에게 건의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다는 게 근본적인 문제”라고 했다. 중앙SUNDAY는 유 전 장관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했으나 답을 듣지 못했다.

 한편 열흘 넘게 공석 중인 차기 문화부 장관으론 커뮤니케이션 전문가가 유력할 것이란 전망이다. 2기 문화부 운영의 중심을 국정홍보 강화에 둘 것이란 진단이다. 7·30 재·보궐 선거에서 낙선한 여당 인사를 배려 차원에서 임명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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