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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이 한데 뭉쳐 중간상 횡포 막아|경북성주 문명동 오이재배단지 주민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상인들의 농간에 「약자」의 위치를 감수해야만 했던 농민들이 한데 뭉쳐 주인의 자리를 되찾았다.
「소비자가 왕」이듯이 「생산자가 주인」이라는 당연한 논리를 행동으로 확인한 농민들은 경북성주군 용암면문명동 오이재배단지(회장 김일용·40)의 1백25가구.
이들은 애써 가꾼 농산물을 도심지에 출하, 중간상인들의 값 조각에 휘말리기 일쑤던 구걸판매방식에서 벗어나 산지에 도시상인들을 끌어들여 현지공판을 실시하는데 성공했다. 이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농산물 유통구조의 역류현장인 것이다.
이곳 문명오이공판장이 개설된 것은 지난3월29일 농민들이 24km나 떨어진 대구시내에까지 출하하는 것을 거부하고 현지공판을 고집하면서 모든 농작물을 용암단위농협 문명분소에 출하하자 어쩔 수 없게 된 대구시내 상인들이 직접 산지를 찾아와 경매에 응하게 된 것이다.
이 곳에서 생산되는 오이는 연간4백20t .대구시내 거래량의 90%나 차지하고있다.
그러나 생산농민들은 지금까지 「트럭」을 전세내 오이를 대구시내에까지 수송해 밤을 새워가며 대도매상이나 중간도매상에 출하하는 과정에서 제값도 못 받고 팔아 넘기는등 손해를 보아 온데다 수송경비·유통경비부담을 고스란히 감수했던 것이다.
게다가 영농자금이 달려 중간상인들에게 수확도 하기 전에 밭떼기로 헐값에 팔아넘기기 일수였고 도시 상인들로부터 선도자금(先渡資金)을 빌어 쓴 뒤 현물상환 때는 시중시세보다 훨씬 싼값에 넘겨주기도 했다.
이같이 해마다 적자영농에 견디다못한 문명오이재배단지농민 1백25가구는 올해부터 중간상인들의 횡포를 막고 생산농민∼대도매상∼중간도매상∼소매상∼소비자등 5단계 유통과정을 생산농민∼소매상(경락자)∼소비자등 3단계로 축소, 생산농민과 소비자를 함께 보호하기 위해 대구시내 소상인 30명을 미리 확보해 이들을 상대로 직거래를 텄다.
현재 농협경매사 5명이 고정 배치돼 있는 문명오이공판장은 홍수출하를 막기 위해 농민들에게 격일제로 출하케 하면서 출하물량을 조절, 경락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이곳 오이경매시세는 요즘 대구시내 도매시세와 맞먹는 개당 평균1백82원 꼴.
현지공판에 따라 생산농민들이 얻는 이익의 효과는 포장·수송에 따른 일손을 덜고 유통경비도 15%나 절감할 수 있는데다 중간상인들의 개입을 막아 농산물 제값 받기에 성공한 것 등이다.
뿐만 아니라 도시상인들이 「픽업·트럭」등을 동원, 산지까지 찾아와 주기 때문에 판매처리가 신속해 소비자들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선도유지가 가능한 이점도 있다.
매일 하오 2시∼4시30분까지 건평 70평 규모의 농협 문명분소에서 이루어지는 경매량은 하루평균 6t으로 경락가격이 3백50만원이상 되고 있다.
농민들은 경락가격의 5%를 농협취급수수료로 공제하고 이중 1%는 고객들에 대한 이익배당금으로 거래상인들에게 환원시켜 거래선을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유통구조개선으로 농민들은 올해 총생산액 1억3천2백87만5천원 가운데 영농비·경영투자비등 2천9백17만5천원을 제하고 나면 순수익이 1억3백70만원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있다.
이는 가구당 순수익이 평균 1백17만1천원이 돼 그동안 도시출하에 따른 적자영농을 완전히 탈피하는 농촌유통구조혁명의 계기가 되고 있다.
현지공판장 개설에 앞장서온 오이재배단지회장 김씨와 용암단위농협조합장 이정현씨(44)등은 『중간상인들에 의한 밭떼기·선도자금이용·도시출하에 따른 경비부담 등으로 그동안 적자영농을 면치 못했으나 이제 유통구조의 역류현상으로 농민들의 권리를 되찾았다』며 『현지공판제도만이 생산농민과 소비자를 보호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대구=이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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