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활의 좌절을 경쾌하게 서술(김동선작 『황지』)|묘사의 정확성을 보여준 농촌체험(이문구작 『우리 동네 강씨』)|관념적 구원의 허구 진지성이 살려(이청준작『새와 나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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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달의 『낯선 시간 속으로』가 오늘날의 대학생을 그린 소설이라면 최근 간행된 김동선의 『황지』(순천당)는 60년대의 대학체험을 술회한 장편이다. 두 소설 모두 대학생활의 좌절을 추적, 묘사하고 있는데 전자가 자의식의 부담으로 자유롭지 못한 반면 『황지』는 그 제재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경쾌하게 진술하고 있다. 이것은 작가의 시점이 상당히 객관적일 수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절대적인 가난 속에서도 지켜온 한 대학생의 순수성을 「섹스」와 돈으로 짓밟으려는 하숙집여주인의 가학증은 조금만 확대해석해도 가공할 정치적 「알레고리」일 수가 있다. 그러한 해석을 위해서 복잡한 추론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정치적인 「데마」의 무게를 경쾌하게 운반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으나 또 그 경쾌한 서술이 「테마」의 단순성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이문구의 『우리동네 강씨』(실천문학)가 어떤 확실성을 획득했다면 그것은 『황지』가 대학사회를 다룬 반면에 이 소설이 농촌을 다뤘기 때문에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농촌이라는 제재로부터 발해지는 살아있는 체험의 무게도 무시할 수는 없다. 문제는 『우리동네 강씨」가 농촌체험을 이야기하면서 보여주는 묘사의 정확성과 우리말이 지니는 표현 가능성의 확장 따위가 작가의 임의성을 훨씬 능가한다는데 있다. 이문구는 문제의식만으로 훌륭한 소설이 되지 못하는 까닭을 일깨워주는 일례라고 할 것이다.
또 같은 제재를 다루더라도 1회 적으로 그치는 경우와 연작형식으로 다룰 때에 그 비중이 동일할 수는 없다. 『우리동네 강씨』는 「우리동네…」의 다른 작품들과 대비적으로보다는 누적되는 것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이 경우 그 질감과 농도가 더욱 짙어질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한편 반드시 연작형식을 취하지 않더라도 정신적인 계열성을 유지함으로써 동일한 무게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이청준의 『새와 나무』(문예중앙)가 그런 예로서 이 작품은 그가 꾸준히 탐구해 오고 있는 관념적 구원의 한 시도라고 할 것이다. 이문구의 현장체험이 문제제기 적이라면 이청준은 그것의 치유가능성에 몰두하는 경우인데 그러한 방향설정에 따라 우열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고 그 진지성의 정도에서 소설적성과는 평가된다.
소유와 지배에서 해방된 삶이라는 관념적인 구원을 모색하면서도 『새와 나무』가 공허한 허구로 전락하지 않은 것은 바로 그러한 진지성이 버텨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작가의 진지성이란 현실의 비중을 경감 없이 짊어짐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새와 나무』가 구원의 가능성을 방황으로 환치시키면서 이야기를 끝내고 있는 것은 의미심장하다하겠다. 부조리한 현실이 엄연히 존재하는 한 관념만으로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은 기만일 뿐이기 때문이다.
소설이 현실보다 항상 감명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현실에서 직접 산출되지 않는 요소를 지니는 것도 사실이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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