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다시 4·19를 맞는 김주열군 어머니 권찬주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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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9일은 4·19학생 혁명 20돌-. 아직도 병상에서 아물지 않은 상흔을 안고 투병하는 그날의「젊은사자」들이 있다. 또 꽃다운 나이의 아들·딸들을 민주대열에 바친 어버이들은 그들을 잃은 슬픔을 아직도 씻지 못하고 있다.
4·19 당시 부상자 1천8백여명 가운데 지금껏 투병하고있는 환자는 국립원호병원에 입원중인 김호성(40) 박종규(46) 장치효(37)씨와 용인정신병원에 1명등 4명.
이밖에 상처가 심해 국가유공원호대상자로 지정된 4·19용사 2백45명 가운데 30여명이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4월혁명의 희생자는 4·19 당시 1백93명이 숨지고 지난 20년사이 30명이 벙상엑서 숨을 거둬 모두 2백23명에 이른다.
권찬주씨(61·여·서울봉천4동581의13)도 민주제단에 바친 아들생각에 응어리진 가슴을 쓸어안으며 또 4·19를 맞는다.
아들 김주열군을 잃을 때는 40대초의 한창 나이였으나 이제 백발이 성성하다. 『이땅에 민주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라면 남은 3형제를 다 바쳐도 아까울것이 없다』-. 1960년 3·15부정선거때 마산에서 맨처음 민주의 봉화를 올렸던 김주열군(당시17세·마산상고1년)의 어머니 권씨의 감회어린 말이다.
자유당의 부정선거에 항의, 시위에 참여했던 김군이 행방불명된지 한달만에 최루탄이 박힌 시체로 마산앞바다에 떠오르자 이는 곧바로 4·19 학생혁명의 도화선이 되었었다.
올해 회갑을 맞은 권씨는 주열군의 죽음으로 집안이 기울기 시작하여 지난20년간 온갖 풍상을 다 겪었다. 아들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5년이나 심장병을 앓다 돌아갔다. 남은 3형제와 함께 상경한 권씨는 15년동안 셋방을 돌며 지금은 봉천동산동네에서 보증금 50만원에 윌3만원짜리 단칸방에 살고있다.
유산으로 남긴 논·밭을 판 돈도 떨어져 행상을 하는등 어려운 생활속에서도 권씨는 해마다 봄이면 마산을 찾는다. 지난3월 주열군을 찾아간 권씨는 『너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며 새로운 세상이 밝아 오는것을 아들에게 알려주었다고 했다.
권씨는 여생을 4·19희생자유족회를 위해 바쳐 장학관설립을 추진하여 어려운 학생을 돕고싶다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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