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가 가라앉고 99일째인 23일. 그는 평소처럼 오전 5시에 눈을 떴다. 오전 2~3시 자리에 들어 두세 시간 뒤 깨는 일상이 줄곧 반복됐다. 그 이상은 잠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조용히 일어나 전남 진도실내체육관 밖으로 나갔다. 자원봉사자가 주는 커피 한 잔을 받아 들고 담배를 꺼냈다. 오늘은 다른 일이 생기려나….
세월호 사고로 실종된 허다윤(17·안산 단원고 2)양의 아버지 허흥환(51)씨. 그는 딸이 차가운 바닷속에서 지낸 날짜만큼을 진도에서 지내고 있다. ‘신경섬유종’이란 희귀 병을 앓고 있는 아내와 함께다. 회사에 나가지 못한 지도 100일이 거의 다 됐다.
생활은 이제 단조로워졌다. 새벽에 잠에서 깨어 다른 가족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범정부사고대책본부 브리핑을 듣고, 허씨 아니면 부인이 바지선에 올라 수색을 지켜보고, 또 얘기를 나누다 잠자리에 든다. 23일엔 부인이 바지선에 갔다 오후 3시쯤 돌아왔다. 기다리던 남편에게 전한 말은 딱 한마디였다. “똑같아요.”
바지선에 들르기 시작한 건 사고가 나고 50일쯤 됐을 때였다. “다윤이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보다 불안감이 강해지던 즈음”이라고 했다. 바지선에 오를 때면 잠수부를 붙잡고 애원한다. “제발 우리 다윤이 안아 볼 수 있게라도 해주세요. 선생님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아직 다윤이는 소식이 없다. 그건 진도에 남은 다른 실종자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일상은 더 단조로워졌다. 가족들끼리 얼굴을 맞대도 늘 하는 얘기가 되풀이된다고 했다.
그걸 깨는 건 가물에 콩 나듯 들려오는 “찾았다”는 소리다. 24일 동안 아무 소식이 없다가 지난 18일 “발견했다”는 얘기가 들렸을 때 심장이 터질 듯 가슴이 뛰었다고 했다. 하지만 나중에 들려온 신원 확인 소식은 ‘조리사’라는 것이었다.
그럴수록 정성을 들였다. 나흘 전에는 가족들이 90만원을 모아 통닭을 잔뜩 마련해서는 해경 함정 편으로 잠수사들에게 보냈다.
허씨는 “요즘 다윤이가 부쩍 꿈에 자주 나타난다”고 했다. 꿈에서 하는 말은 “아빠 뭐해요. 빨리 데려가 줘요”였다. 꿈을 꾼 다음 바지선에 오르면 목청껏 소리질렀다. “다윤아, 어디 있니.”
진도에는 다른 아홉 가족이 더 있다. 외동딸 황지현(17·단원고 2)양의 어머니 신명섭(49)씨와 아버지 황인열(51)씨, 단원고 양승진(58) 교사의 아내 유백형(54)씨 등이다. 석 달 넘게 체육관 바닥에서 지내면서 다들 신경통 같은 병이 생겼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다 보니 기억력이 뚝 떨어졌다고 했다. 매일 얼굴을 대하는 가족들은 서로에게 이런 말도 한다. “아, 내가 직접 바다에 뛰어들 수 있다면….”
가족들이 기다리는 팽목항 이곳저곳에는 아직도 노란 리본이 잔뜩 매어져 있다. 23일 다윤양의 아버지 허씨가 그 리본을 보며 중얼거렸다. “저것들도 변하네. 선명한 노란색이었는데….” 색이 바랜 것을 보고 하는 소리였다. 늘 보던 리본들을 다시 훑던 허씨의 시선이 한 리본에서 멎었다. 허씨의 입술이 살짝 움직이며 리본에 적힌 글귀를 읽었다. “기적을 기다립니다.”
진도=권철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