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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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삼림보호는 요즘만의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중국에선 벌써 2천년도 넘는 아득한 옛날부터 도벌에 대한 형벌이 있었다고 한다. 『주례』라는 중국고서를 보면 삼림에는 대록·중록·소록 등 세 등급을 매겨 그 등급에 따라 관리를 파견하고 벌채를 막았다.
어떤 기록에는 요순시대부터 삼림을 지켰다는 얘기도 있다.
요순이 한날 전설이라고는 하지만 아뭏든 4천수백년전의 일이고 보면 삼림은 태초부터 선정의 한 상징이었던 것 같다. 그 무렵의 삼림이란 글짜 그대로 원시림이었을 텐데, 그것마저도 보호한 것이다.
다산의『목민심서』에 따르면 우리 선조들도 삼림을 소홀히 다루지 않았다. 봉산(나라에서 지정한 산)에서 금양하는 소나무를 벤 사람은 엄중하게 논죄했다. 형량이 사형에서부터 장60에 까지 이르는 것을 보면 여간한 중형이 아니다.
그러나 공연히 형량만 엄했을 뿐 갖가지 금령이 빈말에 그쳤다고 다산은 한탄해 마지않았다. 가령 누가 삼림벌채로 논 죄를 받게 되면, 산에서는 어느 결에 백 그루의 나무가 베어졌다고 한다. 관가에 바칠 뇌물을 장만하거나 속전을 마련하기 위해 도벌을 해서 그 목재를 팔아야 하는 것이다.
다산은 주나라의 율사 상앙이 와도 별 수가 없었을 것이라고 풍자했다.
오늘 우리나라의 산들이 기껏 잡목이나 소나무로만 덮여있는 사실도 실은 그 무렵의 산림 행정과도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송금」이란 금령이 있어서, 소나무만 보호하고, 전나무(회), 잣나무(백), 신나무(풍), 비자나무(비)는 불문에 붙였다. 쓸만한 나무는 베어도 좋고, 풍류(?)에나 맞는 소나무는 장려한 것이다.
『속대전』에 보면 그나마도 경상도는 10년마다, 강원도는 5년마다 벌채를 했다. 재궁(임금의 관) 감나무를 미리 골라두기 위해 그런 것이다.
요즘 우리 나라의 식목일은 1949년부터 실시해 오고 있다. 공휴일로 정한 이유도 식목행사를 갖기 위한 것이다.
식목일의 유래는 1872년 미국에서 비롯되었다. 그 무렵「네브라스카」주의 식민지 개척자들이 삼림을 마구 베어 산마다 벌거숭이였다. 이 때 신문발행인인「J·스털링·모턴」은 4월10일을 식목일로 지정하자는 제언을 했었다. 주로 학생들에게 식목운동을 벌여 산마다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지금은 전 미국이 4월 마지막 금요일에 이런 식목행사를 갖는다.
식목은 내일을 위해 씨를 뿌리는 일이다. 후세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값있는 일은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다. 식목은 바로 그 희망의「메시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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