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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물쓰레기 자원화 ··· 메탄가스, 냄새 없는 비료 상용화가 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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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4호 06면

[박완철 박사] ▶상주농잠고등전문학교 졸업 ▶건국대 농대 학사·석사·박사 ▶현재 KIST 책임연구원 ▶대산농촌문화상, 한국공학기술상, 올해의 과학자상 수상

‘1990년대 초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첫 억대 연봉자’ ‘KIST에서 현재 가장 많은 누적 기술료 수입(약 20억원)을 올린 과학자’ ‘속칭 SKY 대학과 유학파 출신이 아닌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려운 KIST에서 건국대 농대를 졸업하고 국내 박사이면서도 아주 잘나가는 과학자’.
KIST 박완철(59·사진) 박사에게 따라 붙는 수식어들이다. 언뜻 들으면 깔보는 듯한 우스운 별명도 있다. ‘똥 박사’다. 박사학위가 엉터리 아니냐고 오해할 수도 있건만 그는 이 별명을 가장 좋아한다. 인분과 돼지분 같은 ‘똥’을 잘 정화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느라 30여 년 연구 인생을 보낸 데다 그 성과로 명성을 날리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국정 과제인 창조경제를 견인할 수단 중 하나로 공공연구기관 기술의 민간 이전과 중소기업 육성을 꼽고 있다. 이공계 정부출연연구소들은 지금 정부 정책에 발맞추느라 초비상이 걸려 있는 상태다. 이런 측면이라면 박 박사는 단연 ‘모범 과학자’다. 이미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개발한 소형 가정용 정화조와 소형 축산분뇨정화조, 대형 축산분뇨처리공정과 대형 하수처리공정 등을 민간 중소기업에 기술을 이전해 해당 기업들은 많은 돈을 벌었고, 하천 오염은 크게 개선됐기 때문이다. 소형 가정용 정화조는 1만여 곳, 소형 축산분뇨정화조는 5000여 곳, 대형 축산분뇨처리공정과 대형 하수처리공정은 100여 곳에 보급됐다. 이 덕에 2009년 정부가 조사한 공공연구기관 전체 과학자의 총 기술료 수입에서 박 박사는 개인 3위에 올랐다.

[박방주가 만난 사람] KIST ‘똥 박사’ 박완철 박사

[KIST 최초 억대 연봉자]
그는 “응용기술을 개발하는 사람들은 첫째도, 둘째도 기술을 이전해 상업화하는 것이 목표가 돼야 한다”며 “그래야 혈세로 연구한 기술이 국부를 창출하고, 창조경제도 달성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홍릉에 있는 KIST로 지난주 그를 찾아갔다. 그의 실험실에서는 정화되기 전 연구 재료인 분뇨 등이 섞인 하수, 음식물쓰레기에서 나는 악취가 더 심했다. 박 박사는 평생 맡아 온 냄새라며 전혀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다. 다른 연구자들에게 악취를 풍길 걸 우려해 실험실은 본부와 떨어져 있는 2층짜리 작은 독립 건물을 배정받아 사용하고 있었다.

[토종 미생물로 하수 정화]
1층 실험실에서는 가정에서 배출되는 하수(분뇨를 포함한 생활 폐수)를 정화하는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다. 시커먼 하수에 분뇨 같은 오염물질을 잘 분해하는 미생물을 넣어줬을 뿐인데 여섯 시간 정도 지나자 서울 수돗물의 원수 수준인 깨끗한 물로 변했다. 그가 개발한 하수처리공정은 하루 3만t 처리 용량의 경북 상주시 대형 하수처리장을 포함해 주요 도시에 보급됐다. 축산분뇨만을 처리하는 대형 축산분뇨처리공정은 경남 합천군에 건설돼 운영 중이다. 정화 전 축산분뇨나 인분은 악취가 심하지만 박 박사의 공정을 거치기만 하면 냄새는 거의 나지 않고, 정화된 물은 상수원 원수나 농업용수로 쓸 수 있는 수준으로 바뀐다. 거대한 합천 축산분뇨처리장에서도 분뇨를 싣고 오가는 차량과 분뇨를 쏟아내는 곳 외에선 악취가 거의 풍기지 않았다. 테니스장만 한 정화조에서는 미생물이 분뇨를 분해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로 분뇨가 부글부글 끓고 있을 뿐이다.
박 박사가 분뇨 처리에 뛰어들게 된 것은 전두환 전 대통령 덕이다. 1980년대 당시 전 대통령이 한강을 시찰할 때 악취가 나자 “한강을 어떻게 하면 깨끗하게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고, 담당자는 “성능 좋은 정화조를 개발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 숙제가 ‘대통령 긴급 과제’라는 이름으로 KIST로 내려왔고, 인분을 만져야 하는 일에 아무도 나서지 않자 박 박사가 자원해 맡았다. 그는 “남들이 하지 않는 연구를 할 수 있고,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해 손을 들었던 것”이라고 회상했다. 수거한 실험용 분뇨를 들고 밤늦게 집에 들어가는 일이 다반사였는데 한 번은 집 거실에 둔 분뇨 통을 엎지르는 바람에 온 가족이 며칠 동안 악취에 시달리기도 했다. 자신이 개발한 축산분뇨정화조를 설치한 농가를 겨울에 방문했다가 미끄러져 정화조에 목까지 빠진 일도 있었다. 그래도 분뇨 정화조에서 냄새가 나지 않고 잘 분해되고 있는 것을 보고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연구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기술을 전수받은 중소기업은 큰 돈을 벌었다. 박 박사도 덕분에 기술료를 받아 KIST에서 첫 억대 연봉자가 됐다. 문제는 억대 연봉을 집에 갖다 주지 않았는데 신문에 잇따라 보도되는 바람에 부인한테 혼쭐나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똥과 맺은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환경 분야에서 ‘똥 박사’ 하면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대가’ 대접을 받고 있기도 하다. 박 박사가 개발한 특허 기술은 총 50여 개며, 그중 10개 이상이 지금 활용되고 있다.

[분뇨 통 엎어 악취 소동]
박 박사의 분뇨 또는 하수 처리 공정에는 ‘토종 미생물’이 오염물질 분해 해결사로 투입된다. 그가 30여 년간 전국 산야를 돌며 채집한 100여 종의 미생물 중 분해 효율이 아주 높은 10종을 찾아내 이들을 처리 공정에 집어넣는 것이다. 화학약품은 하나도 사용하지 않는다. 그는 친구들과 등산을 자주 가지만 관심은 그 지역의 미생물 채집에 쏠려 있다. 부엽토 같은 흙을 한 줌씩 떠와 쓸 만한 미생물을 찾아내는 것이다. 일본 후지산, 백두산도 다녀왔다.
박 박사는 미생물을 단단한 덩어리로 만들어 사용하는 특허 기술도 갖고 있다. 이를 하수처리장에 넣어두면 10년 동안 천천히 녹으며 미생물을 방출해 일정한 하수처리 효율을 유지하게 한다. 10년간 미생물을 보충해 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그는 수십 차례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했다. 미생물을 덩어리로 만들어 정화조에 넣으면 어떤 것은 몇 분 만에 녹아버리고, 어떤 건 물살에 쓸려가기도 했다. 10년 동안 서서히 녹게 하는 비결을 묻자 그는 비밀이라며 입을 다물었다.
그는 남은 연구 인생 동안 꼭 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음식물쓰레기를 자원화하는 것이다. 이미 공정은 개발해 놓았으나 100억원 정도 들어가는 음식물쓰레기 재활용 시설을 짓지 못해 보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음식물쓰레기를 그의 공정으로 처리하면 막대한 양의 메탄가스를 얻을 수 있고, 찌꺼기는 냄새 안 나는 고급 비료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엄청난 비용을 들여 수거한 음식물쓰레기가 거의 버려지고 있는 실정이다.



박방주 교수 : 중앙일보에서 20여 년간 과학전문기자로 활동했으며, 2009~2012년 한국과학기자협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가천대 전자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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