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화 피고 최후 진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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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0·26사건에 연루돼 당시의 참모총장으로서 이 법정에 나온것이 부끄럽다. 김재규 범행에 대한 방조범으로서 검찰에 의해 기소된데 대해 이렇게 말하고싶다.
실제 10윌26일 김재규가 일을 저지르고 나서 본인이 이용당했거나 접촉한 것은 김재규가 『급한일이 생겼다』며 자동차에 같이타고 궁정동식당에서부터 같은차를 타고 육군본부에 갈때까지 15분 동안이다.
껌껌한 차속에서 나는 『무슨 큰일이 났느냐』 그 김재규에게 추궁했으나 김재규는 각하서거를 알려주며 북괴의 침략이나 국내소란이 일면 큰일이라면서 본인의 책임과 중요성만 얘기했었다.
나는 중정부장이 대통령서거를 알렸고 그같이 중요한것을 거짓말 할리 없다고 생각해 그 얘기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나는 각하서거 사실에 큰 충격을 받고 북괴침략이나 민심동요·내란등으로 번지면 나라가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국가장래문제를 생각했다.
또 군이 혹시 연루되지 않았나하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혼란이었다.
따라서 범인이 누구냐는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각하가 청와대안의 거소에서 돌아가신 사실등으로 내부 소행인줄만 알았고 청와대 내부에서 일어난 일이라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볼수도 없었다.
각하 서거사실에 대해서는 육본으로 가는 15분 동안 차안에서 들은것이 전부이고 「벙커」 도착후에는 김재규를 딴방으로 안내했기 때문에 나는 따로 떨어져서 총장으로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를 취했다.
30∼40분간에 걸쳐 조치를 끝낸 다음 궁금해서 장관인 국방부장관·합참의장이 김재규와 만나 사후대책을 논의하는것을 드문드문 드나들며 들었을 뿐이다.
접촉도 이용당할 시간도 없었다.
10월26일 하오 9시30분 국무총리가 도착해 김재규등이 국방부 회의실로 장소를 옮긴 후 나는 「벙커」안에서 사후조치등 내가 할 일을 계속했다.
하오11시30∼40분쯤 국무회의가 어떻게 됐으며 사후대책을 알기 위해 국방부로 올라갔다가 김계원으로부터 범인이 누구라는 것을 듣고 바로 내려와 헌병감과 계엄후 합동수사본부장직을 맡은 보안사령관에게 즉각 김재규를 체포토록 지시했다.
이것이 김재규에게 이용만 당했거나 접촉한 전부다. 최초로 대통령유고 소식을 듣고 총장으로서 해야할 일은 이 사실이 밖에 알려져 북괴가 이를 알고 침략하거나 사전에 연루된자가 있어 내란이 일어날 것을 막는 것이었다.
나는 전 부대에 비상을 거는등 대항 조치를 하고 수도권부대에는 출동준비를 시키는등 최선의 조치를 다했으며 국무회의의 논의에 대비, 계엄준비를 서둘렀던것이 전부다.
그 과정에서 군관련자가 없는가를 점검하고 군 장악과 지휘기능을 발휘하기위해 참모차장이하 전 참모를 소집했다.
나는 사건발생 1∼2시간 사이에 이같이 막대한 일을 하는등 최선을 다했다. 그동안 많은 상급자가 나오고 참모들이 나왔으나 아무에게서도 적절한 지시나 건의를 받은일 없이 독자적으로 만단, 최선을 다해처리했다.
상사의 지시나 참모의 건의를 잘못판단, 처리한 일이 없으며 건의를 잘못 처리했다면 지금이라도 반성하겠다.
결과적으로 범인인 김재규가 나를 이용하려했고 아무것도 모르고 상당시간동안 범인과 같이 보내 국민과 육군전우의 의혹을 사게된데 대해 국민에게 부끄럽고 뭐라고 말해야할지 모르겠다.
이용당할뻔 했고 범인과 같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 국민과 군에 미안하다.
끝으로 32년반동안 군인으로서 내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건만, 또 10·26사태때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으나 능력이 부족하거나 미진해 국민과 군에 누를 끼쳤다면 용서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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