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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차기 대권'의 자격과 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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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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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의 생리를 꿰뚫고 있는 사람으로 박관용 전 국회의장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면 검찰에 불려다니거나 자살하는 일이 생겼겠느냐”고 역설한 적이 있습니다. 정권재창출의 절실함을 묘사한 말입니다. 노 전 대통령을 임기 말에 만났던 함세웅 신부는 “노 대통령이 정권 재창출의 열의가 별로 없었다”고 탄식했습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경선 과정에서 내걸었던 표어는 ‘반드시 정권 재창출을 이루겠다’였습니다. 친박 경쟁자를 향해 ‘정권 재창출이야말로 박근혜 정권의 성공을 보장하는 진정한 친박의 길’이라는 메시지를 던진 거죠. 여기엔 스스로 정권 재창출의 주인공이 돼 보겠다는 야망도 있습니다. 임기가 창창하게 남아 있는 박 대통령으로선 정권교체든 정권 재창출이든 자신의 임기를 놓고 설왕설래하는 게 불쾌할 수 있습니다. 특히 단임제의 유한성에 갇힌 한국의 대통령들은 당대의 절대적 업적에 집중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차기 정권은 아무래도 좋다는 착각에 빠져들곤 하죠. 대표적인 사람이 김영삼·노무현 대통령입니다. 두 대통령은 정권재창출에 실패했습니다. 반면 김대중 대통령은 당대는 후대가 평가한다는 냉정한 인식을 지녔습니다. 그래서 노벨평화상 수상과 정권 재창출, 두 가지에 집념을 불태웠던 겁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권력은 나눌 수 없다’는 권력관이 뼛속까지 배어 있습니다. 실세 2인자를 무력화시키려는 건 그의 정치적 본능입니다. 박근혜 시대의 여권 차기 주자들은 딜레마에 직면합니다. 대선 주자감으로 빨리 부각되면 먼저 죽을 것이고, 늦게 부각되면 정권을 넘겨줄 것이다-. 김무성의 차기의 꿈은 이런 딜레마 속에서 키워가야 합니다. 2008년 집권 이래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의 대표들은 박희태·정몽준·안상수·홍준표·황우여입니다. 대부분 현직 대통령의 그늘에서 존재감이 없었습니다. 김 대표는 선출 과정에서 박 대통령의 빚을 지지 않았습니다. 전임 대표들보다 카리스마가 강하고 세력 형성을 즐기는 천상 정치인입니다.

 김 대표의 강점은 통 큰 정치, 공존의 정치라는 이미지입니다.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그의 포용성을 평가하는 의원이 많습니다. 지난해 5·18 광주민주화항쟁 기념곡 지정 논란이 한창일 때 그는 새누리당 공식 회의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은 민주화 운동 시절의 주제가이고 노래 가사 어디에도 반국가적이거나 친북적인 내용이 없다. 광주시민들이 원하는 대로 해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코레일 파업으로 철도노조와 정부가 정면 충돌할 때 민주당 박기춘 의원과 독자적으로 중재안을 도출한 적도 있습니다. 이때 청와대를 설득하기 위해 김기춘 비서실장과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응답이 없어 두 사람 사이는 더 나빠졌다고 하죠. 자기 정의감에 빠져 분열과 증오의 정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 사회는 통 큰 공존의 정치가 필요합니다.

 김무성 대표는 현충원 방명록에 ‘새누리당이 보수 혁신의 아이콘이 되어 우파 정권 재창출의 기초를 구축하겠다’라고 적었습니다. 그는 특정 세력의 대표일 순 있어도 국가 지도자로서 뭔가 결핍돼 있습니다. 대선 주자다운 스토리와 메시지가 없는 겁니다. 지난 20년간 인기 없었던 보수·우파를 매력적으로 혁신한다면 그게 김 대표의 스토리와 메시지가 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김 대표가 선제적으로 충분하게 설명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병역과 전과 얘기입니다. 137억원이란 많은 재산은 대선 주자인 안철수·정몽준씨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이기에 문제로 치지 않겠습니다. 대학 시절 그 건장한 청년이 14개월 군복무를 하고 이등병으로 전역했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 궁금합니다. “그땐 허용됐던 일이다”라는 답변만으론 부족합니다. 1996년엔 특가법상 알선수재로 1000만원 벌금형, 2000년엔 선거법상 사후 후보자 매수로 80만원 벌금형을 받았는데 국가 지도자로서 치명적인 사건이 아닌지 궁금합니다. 보수·우파가 인기가 없는 건 부패와 기득권의 상징이란 비판 때문이죠. 병역과 전과 부분을 설명하지 않고 혁신으로 도약할 순 없습니다.

전영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