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드 왕의 와병으로-사우디 왕가 흔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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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사우디아라비아」의 「할리드」왕 (67)이 갑자기 건강이 악화, 「에너지」 수요국들인 서방 세계는 「사우디아라비아」왕가의 등정에 지대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최근의 「이란」 회교 혁명.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인접 회교국인 남북「예멘」의 친소 경향, 지난 11월의 「메카」 사원 점거 사건 등 국내외적 정세 변화로 골치를 썩고 있는 데다 최근 「할리드」왕의 건강 악화를 계기로 더욱 왕실의 권력 체계에 불안감이 감돌고 있다.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할리드」왕은 최근 병세를 회복했고 또 황태자 「파하드」의 왕권 계승 문제 등은 표면적으로는 안정을 유지하고 있으나 「메카」 사건 이후 왕가의 분열 조짐과 불화설이 나돌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왕권은 「이란」과는 달리 왕의 형제들에게 계승되기도 하는 독특한 제도.
64년까지 11년 동안 통치했던 「사우드」왕이나 64년 이후 75년까지의 「파이잘」왕도 모두 형제들의 손에 의해 폐위 또는 피살된 악몽이 불안감을 더해주고 있다.
현존 「사우디아라비아」왕가엔 모두 4천명의 아들·손자들이 생존, 그중 2백명이 정부와 업계에서 크게 활약, 이 나라의 정치·경제를 요리하고 있다.
「파하드」 황태자의 배다른 형제인 「압달라」 친위 대장이 「파하드」의 왕권 계승자로 지명돼 있으나 「파하드」의 친동생인 「술탄」 국방상과 왕권을 다툰다는 설도 나돌고 있다.
「할리드」왕은 건강 문제로 정치에 사실상 관여하지 않고 있으며 황태자 「파하드」를 비롯한 그의 친동생 6명 등 소위 「칠 공자」가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내무장관 「나이프」, 「리야드」지사 「살만」, 내무차관 「아하마드」 등은 「술탄」 국방상과 함께 「파하드」 황태자의 막강한 권력 「시스팀」이다.
그러나 이들은 회교 골수파들로 전통을 중시하는 「와하비」 (회교 종교의 일파)로부터 지나치게 진보적이라는 압력을 받고 있는 데다 「파이잘」 전왕의 2세들인 배다른 조카들로부터 너무나 보수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왕가의 이복 형제, 친형제 및 그의 2세들 사이의 불화도 문제지만 서구에서 교육을 받고 온 진보적인 지식인 세력도 만만찮다.
현 「사우디아라비아」는 인구 3천5백만의 「이란」과는 달리 인구가 불과 6백만 이어서 통치 부담이 적으나 빈부의 심한 격차에서 진보 세력들로부터 불만을 사고 있다.
검소한 「할리드」왕만 해도 1억2천만「달러」짜리 「요트」와 심장수술실이 설치된 747 「점보」기를 가지고 있고 자가용「제트」기와 호화 궁전을 가진 8백명의 왕가 친족들은 부패와 사치, 추문 등으로 비난을 받고 있다.
심지어 풀 한포기 없는 사막을 정부에 팔아 정부가 국토 개발 계획에 포함시키게 하여 막대한 이득을 보았다는 비난도 일어난 적이 있다.
「리야드」 대학 졸업생들이 경제기획원장관의 「플랜」을 공박한 사실과 작년 「메카」 사건 이후 「나이프」 내무장관을 문책했던 일은 진보파 지식인 「그룹」의 불만을 대변한 것.
한편 사실상 사법권을 장악하고 있는 비공식 종교 지도자 「그룹」 (「와하비」파)들은 남녀가 함께 수영한다는 이유로 「호텔」 수영장의 물을 빼기도 했으며 잡신이라고 인형 판매를 금지하는가 하면 「이슬람」 전통을 앞세워 외국 여성들도 일을 못하게 하는 등 왕실 지배권에 도전하고 있다.
이들은 서구의 물질 문명과 퇴폐주의에 과민한 나머지 이 나라 경제 개발을 위해 동부 유전지 대회사 및 건설 공사에 참여하고 있는 1백50만명의 외국인들에게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들은 원주민과 조금만 알력을 빚어도 추방당하기 일쑤다.
왕실의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은 과격파들이 폭력으로 나올 때 이를 효과 있게 제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작년 12월 과격파들이 경찰서를 습격, 차를 뒤엎고 병기고를 약탈한 이후 정부는 유전 시설을 보호키 위해 1만2천명의 경비병을 배치했다.
그러나 수천 「마일」이나 뻗어 있는 송유관은 도저히 보호 할 수 없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정치 개혁」과 「전통 고수」 사이의 갈등, 왕실 내부의 불화, 주변 국가의 가변적인 정세 등 「사우디아라비아」의 장래를 보는 서방 세계의 눈은 매우 걱정스럽다.

<뉴스위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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